내가 읽은 시

가을에 어울리는 시 : 릴케

스와바 2020. 10. 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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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가을

 

 

나뭇잎이 떨어진다,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듯

저기 아득한 곳에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밤마다 무거운 대지가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 떨어진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

다른 것들을 보라,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어느 한 분이 있어 이 떨어짐을

한없이 부드럽게 두 손으로 받아준다.

 

 

출처: 릴케의 가장 아름다운 시 소유하지 않는 사랑 (고려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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