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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남한산성 줄거리
    내가 읽은 책/남한산성(김훈) 줄거리 2021. 4. 2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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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6년 겨울, 청군이 쳐들어오자 임금과 신하들은 강화도로 피신하기로 한다. 누루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가 청의 두 번째 칸이 되었다. 청군을 피해 강화로 가려던 임금의 행렬은 이미 길이 막힌 걸 알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간다.

     

    남한산성은 작지만 자족한 곳이다. 하지만 갇히면 적이 성을 깨트리지 않고도 말려 죽일 수 있는, 시간이 적의 편으로 흐르는 땅이기도 하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형의 편지를 받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언 강을 걸어 길을 안내해 준 뱃사공을 벤 뒤 성에 도착했다.

     

    대장장이 서날쇠는 식구들을 성밖 처가로 피난 보냈다. 임금이 성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인근 고을 수령들이 변변치 않은 군사들을 데리고 성안으로 들어왔다. 청군들이 성을 포위했다.

     

    임금은 신하들을 성첩에 올려보내 군사들을 위로하고자 했다. 김상헌은 겨울비에 젖은 군병들의 딱한 사정을 임금께 전하고 임금은 비 내리는 마당에 끓어 앉아 오래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정명수는 평안도 세습노비였지만 가족들이 다 죽자 압록강을 건너 청군의 최말단 사수가 되었다. 청의 장수 용골대가 정명수의 총기를 알아보고 조선말 통역으로 삼았다. 조선은 정명수의 입을 통해 칸의 의중을 헤아렸다. 용골대는 곧 도착할 칸을 위해 성안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봉우리를 확보했다.

     

    조선 병사들이 말먹이 풀을 구하기 위해 성밖으로 나오자 용골대는 주위에 있는 마른 풀을 태워버린다. 굶주린 말들이 죽었다. 이시백은 가마니를 거둬들여 성첩에 근무하는 군사들의 추위를 막는데 사용했다. 김상헌은 임금에게 온조왕의 사당에 제사 드릴 것을 권했다.

     

    영의정 김류는 빈집을 헐고 초가지붕을 벗겨서 말먹이 창고에 쌓았다. 말들은 굶주려 죽었고, 죽은 말을 끓여 병사들을 먹였다. 김류는 수어사 이시백에게 척후병을 잘못 뽑았다며 곤장을 쳤다.

     

    송파나루 늙은 사공의 딸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임금이 나루를 김상헌에게 맡겨 민가에서 기르라고 했다. 척후가 돌아오지 않은 죄를 물어 이시백에게 곤장 친 일을 들은 임금이 영상의 행동이 적절치 않다며 이시백을 걱정한다.

     

    김상헌은 나루를 서날쇠에게 맡겼다. 서날쇠는 마다하지 않고 나루를 따듯하게 입히고 먹을 것을 신경써주었다. 김상헌이 서날쇠으 집 뒤란에 두 줄로 묻힌 장독에 대해 묻자 서날쇠는 똥 국물이라 말한다. 지력을 돋우고 벌레를 잡는데 쓴다. 김상헌은 서날쇠의 성첩 군역을 명해주었고 서날쇠는 일꾼들을 지휘해서 망가진 병장기들을 고쳤다.

     

    절에서 내놓은 무명으로 천막을 만들어 성첩의 눈비를 피하려고 했다. 문제는 무명 다섯 겹을 뚫을 바늘이다. 김상헌이 서날쇠에게 바늘을 만들라고 하자 서날쇠는 대나무로 바늘을 만들어 바쳤다. 대장간에서 마을의 개들을 잡아 일꾼과 군병들을 먹였다. 대한이 지나자 성안에 개 짖는 소리가 끊겼다.

     

    조선 군병들 중 유군을 편성해 성밖으로 나가 청군과 싸웠다. 청병은 제 편의 부상병들을 쏘아죽여 적에게 전리품을 남기지 않았다. 싸우고 돌아온 유군들에겐 밥 한 끼를 더 주고 눈에 띄는 공을 세운 병사들에겐 무명을 나눠주었다. 노복들은 무명 대신 면천을 요구하다 상전들에게 매를 맞았다. 유병이 다섯 번째 출전하던 날 유군들이 청병의 시체를 보고 머리를 잘라 성안으로 들여왔다. 김류가 그 머리를 삼거리에 내걸어 백성들이 모두 보게 했다.

     

    서문으로 들어 온 용골대의 문서를 놓고 임금이 신하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묻는다. 최명길은 화친을, 김상헌은 문서를 불살라 싸우고 지키려는 뜻을 밝히자고 한다.

     

    임금은 격서를 지어올리라는 명을 내리는 한편 최명길을 불러 청의 용골대를 만나 화친의 길을 알아보라고 한다. 이시백은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돌로 내리찍기 위해 백성들을 독려해 돌덩이를 모은다.

     

    청의 목책 안으로 들어간 최명길을 정명수가 기다려 맞이해주었다. 용골대는 심양을 떠난 칸이 삼전도에 도착하기 전에 세자와 신하를 인질로 보내라고 하고, 최명길은 난감해한다.

     

    빙고를 정리하다가 발견된 밴댕이젓 한 독의 사용처를 두고 신하가 임금에게 배분해 달라고 청한다. 임금은 세자궁, 왕손, 후궁들과 신하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라 이르고 내관들이 명대로 삭은 생선 두 마리와 젓국 반 홉씩을 나눠주었다. 새남터 무당이 나루의 몸에 귀신이 씌였다고 하자 수어청 비장이 장을 쳤지만 소문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임금이 나루를 불러 몇 마디 묻고 쓰다듬어 주었다.

     

    칸이 청천강을 건넜다는 소문이 성안에 돌았다. 이시백은 성벽에 물을 부어 얼음벽을 만들었다. 성밖에 나가 싸우고 온 병사들에게 간장을 풀어 끓인 쌀죽 한 그릇이 돌아갔다.

     

    늙은 유생이 가짜 유지를 써 청병에게 보이면 청병들이 스스로 물러나거나 회친의 조건을 낮출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임금은 신하들을 불러 세상의 길을 말하라고 한다. 돌아온 말은 청병을 피할 길이 없다는 거였다.

     

    임금이 서장대로 가 군병들과 대신들에게 교시와 격서를 들려주고 모처럼 돼지를 잡고 조껍데기 술을 돌려 군병들을 먹였다. 임금이 군병의 말을 듣겠다고 하니 최명길의 목을 치고 감상헌을 군장으로 삼아달라는 말이 들어왔다. 임금은 행궁에 돌아온 후 낮에 발언한 군병을 대장이 매질하지 말라고 일렀다.

     

    청병은 조선 행궁이 내려다보이는 망월봉을 장악해 중화포를 설치했다. 임금의 유지와 격서가 공포되자 말들은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체찰사 김류는 임금을 성안에 모시고 있으니 군병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말로 모든 논의를 무위로 만들었다.

     

    이시백은 최명길보다 다섯 살 연상이고, 둘은 청년 시절 동문수학한 벗이다. 최명길이 이시백이 있는 서장대로 올라가니, 이시백이 동상에 걸린 군병들의 상처에 돼지기름 먹은 무명천으로 싸매고 있었다.

     

    눈비에 젖지 않게 초로 밀봉 된 격서는 다녀 올 사람을 구하지 못해 승정원에 보관되어 있었다. 김상헌이 한밤중에 서날쇠를 찾아가 격서가 성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정과 격서가 시급히 당도해야 하는 사정을 설명했다. 서날쇠가 격서를 저고리 속에 넣고 성을 빠져나갔다.

     

    김상헌의 주청을 받아들인 임금의 명으로 영의정 김류, 이조판서 최명길, 예조판서 김상헌이 삼헌관이 되어 온조왕의 제사를 모셨다.

     

    임금이 해가 바뀌었다며 사신 편에 세찬을 보내며 청군에 칸이 왔는지 살펴보라 한다. 용골대는 칸의 뜻이라며 세찬을 돌려보냈다.

     

    세찬을 돌려보낸 청군을 크게 치자는 신하들의 말에 임금은 싸움을 윤허했다. 체찰사 김류가 정예포수 이백과 유군 일백을 북문 밖으로 내보낸 뒤 자신은 북문 문루 위에 올랐다. 김류가 군병들에게 전투를 명하지만 청병에 의해 몰살당하다시피 한다.

     

    설날 아침, 임금과 신하들이 행궁 마당에서 북경을 향해 예를 올렸다. 망월봉 꼭대기에서 행궁 안을 들여다보며 신년 하례를 받고 있던 칸의 눈에 이 광경이 들어왔다. 용골대가 홍이포를 쏘아 무리를 해쳐놓고자 했으나 칸이 말린다.

     

    임금과 신료들, 백성과 군병과 노복들이 냉잇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용골대는 칸의 병력 사만까지도 휘하에 두었다. 나흘동안 남한산성 쪽으로 이동해 군막을 세우고 목책을 쳤다. 이 모습을 본 신하들은 다시 최명길의 목을 베라 하고 임금은 그들의 말을 그냥 듣기만 한다.

     

    정축년 정월 중순이 시작될 무렵 송파강이 풀렸다. 청병들은 한시라도 바삐 성을 공격해 원저응ㄹ 끝내자고 칸을 조른다. 칸은 자신이 여기까지 왔으니 조선 임금 스스로 성밖으로 나와 항복을 받겠다고 한다. 칸은 조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선의 사신이 청의 군막에 온 이틀 뒤 ᄏᆞᆫ이 조선임금에게 서신을 보냈다.

     

    임금이 당하관 세 명과 최명길을 불러 각각 칸에게 보낼 답서를 지어올리라고 명했다. 정육퓸 수찬은 임금에게 국서를 쓰지 못하겠다는 상소를 올린 뒤 매를 맞고 초주검이 되어 면제되었다. 정오품교리는 심기가 허해서 심장이 터져 죽었다. 정오품 정랑은 간택되지 않을 글을 지어 바쳤다.

     

    최명길이 쓴 글을 두고 신하들이 울었다. 임금은 승지를 불러 그 글에 국새를 찍었다. 새벽에 서날쇠가 돌아왔다.

     

    서날쇠의 격서를 받은 전라감사는 지방 관군 부대들에 격서를 돌렸다. 성밖의 먼 고지에서 여러 싸움이 벌어졌으나 곧 잦아들었다. 칸은 임금이 보낸 문서를 내던지고 조선의 문서를 접수한 자의 목을 베었다. 용골대가 반나절동안 행궁을 향해 홍이포를 쏘았다.

     

    칸은 강화로 군사를 보내고 조선 임금에게도 항복하라는 문서를 보낸다. 청병들이 강화를 점령했다.

     

    군사들이 화친을 반대한 신하를 칸에게 보내라며 시위했다.

     

    임금이 승지를 불러 사흘 뒤에 출성하겠다고 하자 소식을 들은 당하들은 나가지 말라며 울었고, 군병들은 나가자며 소리쳤다. 김상헌은 사직 상소를 올리고 자살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조정은 출성 이후의 일을 의논하느라 분주했고 성안의 백성들은 보따리를 꾸렸다. 서날쇠가 나루를 데리고 성을 빠져나갔다.

     

    교리 윤집과 부교리 오달제가 척화신을 자처하는 상소를 올렸다. 임금이 그 둘을 불러 어주를 내리고 오열했다.

     

    임금이 삼전도로 가서 칸 앞에 삼배구고두의 예를 올렸다. 칸이 돌아가는 행렬이 구십 리에 이어지고 정명수의 수레가 무거웠다.

     

    청병들은 칸의 명령에 따라 성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시백은 남은 군량미를 털어 군병들을 배불리 먹인 뒤 그들을 해산시켰다. 이시백은 도성으로 들어가고 김상헌은 형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강화로 향했다. 가족을 데리고 산성으로 돌아온 서날쇠는 나루가 자라면 아들과 혼인시킬 생각에 혼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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