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살고 있지만 아직 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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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생활 난방하기농촌에 살고 있지만 아직 도시인 2020. 10. 7. 19:19
남편은 아파트 살 땐 형광등도 못 갈아 끼는 사람이었다. 도시의 답답함이 싫어 시골에 오긴 왔지만 우리는 둘 다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귀촌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사 오자마자 부딪친 문제는 난방이었다. 작년에는 기름보일러와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지냈는데 춥지 않아서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남편은 올 봄에 화목난로를 설치했다. 몇 년 전에 설치했다가 불편해서 식당 하는 친구에게 준 적이 있기에 왜 또 설치하나 싶었다. 남편은 그전과는 많이 다른 거라고 했다. 가장 큰 차이는 난로로 바닥을 데우는 기능이다. 보일러와 난로를 연결해서 난로 열로 물을 데워 순환시키는 거라고 했다. 아직 추위가 오지 않아서 바닥이 뜨끈할 만큼 나무를 많이 넣진 않았지만 물 온도가 올라가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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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어느 날, 마당 한 바퀴농촌에 살고 있지만 아직 도시인 2020. 10. 6. 14:00
아침에 마당에 나가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습니다. 남편은 여섯 시 , 나는 일곱 시. 먼저 나간 남편이 바깥 기온을 알려줍니다. 마당 온도계 눈금 7도. 실내 온도는 22도. 나가기 싫지만 밤새 기다렸을 개들을 생각해 나가 봅니다. 수컷 두 마리는 늘 싸워서 한 마리씩 마당에 풀어놓습니다. 개를 따라다니며 우리도 마당을 몇 바퀴 돌아봅니다. 열매를 딴 대추나무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막막한 모습으로 겨울맞이를 준비합니다. 이제 곧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긴 잠에 빠지겠지요. 화단에는 천일홍 맨드라미가 한창이지만 머위도 한창입니다. 꺾어서 반찬으로 먹어도 되는데 고구마 줄기가 있어 굳이 꺾지 않습니다. 머위는 겨울철 빼곤 늘 저렇게 푸른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올봄에 처음 옮겨 심었기 때문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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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농촌에 살고 있지만 아직 도시인 2020. 10. 5. 10:36
오전의 마당은 고요하다. 자갈을 뚫고 풀이 돋았으면 좋겠다. 돋아나는 풀을 감당하지 못해 자갈을 덮었으면서 다시 풀을 기다리는 것은 두더지 게임을 시작하려고 손목에 힘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마당에 쌓인 저 낮은 자갈더미는 소박한 허세다. 지금이라도 마당에 흩어놓으면 평평하게 될 텐데 여유를 보여주고 싶어서 저렇게 쌓아놓은 것이다. 자갈더미를 볼 때마다 허세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럽다. 자갈을 깔면서 집에 있던 적벽돌로 길을 만들었다. 저곳에 이름을 붙인다면 배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저 길을 오가는 것은 우리 집 마당개 두 마리다. 개 발바닥에는 검은 패드가 붙어있어 사람의 신발 구실을 한다고 하지만, 맨발로 자갈 위를 다닐 것이 안쓰러워 만들었다. 개들은 자갈 위를 마구 뛰어다녀도 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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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적성검사하기 (매우 주관적)농촌에 살고 있지만 아직 도시인 2020. 10. 3. 09:49
아래에 산밤(산에서 나무 혼자 알아서 열매 맺은 자연산 밤)이 있습니다. 누가 무상으로 이만큼 갖다주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반응을 할지 체크해보세요. 1. 우와, 산밤이다! 내가 심지도 가꾸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생기다니 정말 감사하다. 잘 챙겨먹고 이웃과도 나눠먹어야지. 2. 작지만 정말 맛있어 보이는 밤이네.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할까? 검색해보자! 3. 아쿠! 밤이네......너무 작아서 까기 힘들겠는 걸. 하지만 공짜로 생겼으니 한 번쯤 챙겨먹는 것도 나쁘지 않아. 4. 가만있자. 이걸 까고 있으면 손도 아프고 시간도 너무 많이 뺏기겠는 걸.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데 내 시간과 내 손은 소중하지. 큰 것만 골라 몇 개 먹어보고 나머진 내버려두자. 지금부터의 내용은 귀촌 8년차 농촌의 노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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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청 만들기농촌에 살고 있지만 아직 도시인 2020. 10. 2. 14:39
수돗가에 한 그루 있는 석류나무. 얼른 입을 확 벌려 보석 같은 알맹이가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뒤쪽으로 슬며시 썩어가는 것이 보이자 더 기다리지 않고 수확해버렸다. 오리주둥이처럼 입을 삐죽 내민 석류들. 여태 본 것 중에서 가장 많이 달린 석류들. 작년엔 여름에 다 떨어져 붉은 열매는 보지도 못했다. 올해는 어쩐일인지 잦은 태풍에도 견뎌서 마당에 나갈 때마다 활짝 핀 꽃을 본 것처럼 마음을 환하게 해주었다. 한 번 씻어서 물기를 닦아낸 뒤 알갱이를 따로 모으려고 잘랐다. 맨 손으로 했더니 식초를 만진 것처럼 손이 쓰렸다. 새콤달콤한 알갱이들. 숟가락으로 파서 한곳에 모아주었다. 석류를 손질하다보니 겉이 썩은 것은 속까지 다 썩었고, 겉이 멀쩡해도 속이 썩었거나, 완벽해보이던 알갱이가 숟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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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산 참깨 사용 記농촌에 살고 있지만 아직 도시인 2020. 9. 22. 20:07
텃밭에 심어놓은 참깨를 수확했다. 올 여름 장마가 길어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부지런히 움직여 준 덕분에 20kg이 넘는 양을 텃밭 농사로 얻게 되었다. 밭에서 털은 깨는 집에 가져와 여러 번 채에 치고 선풍기 바람에 날린 뒤 물에 씻어 말렸다. 먹던 참기름이 딱 떨어져 한 병 살까 하던 참이어서 얼른 방앗간에 가서 기름을 짰다. 참기름을 짤 때는 잘 말린 깨가 좋다고 들었다. 그만큼 기름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햇볕에 사흘쯤 말린 깨 6kg을 가져갔더니 소주병으로 9병이 나왔다. 갓 짠 기름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가 여름 내내 깨밭을 오갔던 남편의 고단한 발걸음을 보상해준 듯 하다. 그럼 이젠 통깨를 볶아야 한다. 그런데 깨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깔끔하지가 않다. 까만 깨는 죽은 깨라고 한다. 장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