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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난은/천상병내가 읽은 시 2020. 11. 2. 10:55728x90
어제 남편이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요즘 너무 운이 좋아서 조금 불안할 지경이라고 했다.)
올 봄에 화목난로를 설치한 뒤부터 최근까지 나무를 양껏 할 수 있는 형편이 좋고
경제 사정도 생각한 것보다 무난하게 흘러가서 행복하다고 한다.
남편 말대로 근처에서 저수지 공사를 하기 때문에 당분간 나무를 능력껏
가져오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작년엔 기름보일러만 사용해서 집안 온도가 19~20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은 난로로 바닥의 물까지 순환시키면서 25도를 유지하고 있다.
어젯밤에 난로 옆에서 귤을 까먹고 책을 보면서 나 역시 편안하다고 느꼈다.
문득 천상병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으로 시작하는 시다.
월요일 아침, 이 시 구절에 기대 나의 가난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
나의 가난은 / 비스와바
오늘 아침 마당에 섰을 때 마음이 환해 진 것은
내가 가꾸는 작은 화단에 국화가 활짝 피었고
그 노란 빛이 한밤중 별처럼 아침빛에 반짝거렸다는 것
오늘 아침 마음에 추 하나를 얹은 것처럼 무거워진 것은
나를 보는 이웃사람의 안타까움이
눈에 보일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는 것,
집에 있는 시간이 계속 이어진다면
불 꺼진 난로처럼 점점 더 식어갈 거라는 가정형편의 객관적 사실
가난은 내 살갗이지만
시린 팔목을 덮어 줄 옷감을 짜는 일 또한 내 몫이지만
겨울다람쥐처럼 견디는 이 생활이
쓰러진 국화처럼 안쓰럽지만
바닥도 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아침별이 손 내밀고 있어
오늘도 천천히 걸어갈 수 있겠다
(위의 글은 언제라도 지울 수 있음)
나의 가난은/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의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음 그러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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