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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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난은/천상병내가 읽은 시 2020. 11. 2. 10:55
어제 남편이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요즘 너무 운이 좋아서 조금 불안할 지경이라고 했다.)올 봄에 화목난로를 설치한 뒤부터 최근까지 나무를 양껏 할 수 있는 형편이 좋고경제 사정도 생각한 것보다 무난하게 흘러가서 행복하다고 한다.남편 말대로 근처에서 저수지 공사를 하기 때문에 당분간 나무를 능력껏가져오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작년엔 기름보일러만 사용해서 집안 온도가 19~20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지금은 난로로 바닥의 물까지 순환시키면서 25도를 유지하고 있다.어젯밤에 난로 옆에서 귤을 까먹고 책을 보면서 나 역시 편안하다고 느꼈다.문득 천상병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으로 시작하는 시다.월요일 아침, 이 시 구절에 기대 나의 가난을 이야기 해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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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어울리는 시 : 릴케내가 읽은 시 2020. 10. 16. 15:08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가을 나뭇잎이 떨어진다,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듯 저기 아득한 곳에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밤마다 무거운 대지가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 떨어진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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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노벨문학상 수상자 루이스 글릭의 '애도'내가 읽은 시 2020. 10. 14. 11:42
애도 /루이스 글릭 당신이 갑자기 죽은 후, 그동안 전혀 의견 일치가 되지 않던 친구들이 당신의 사람됨에 대해 동의한다. 실내에 모인 가수들이 예행연습을 하듯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당신은 공정하고 친절했으며 운 좋은 삶을 살았다고. 박자나 화음은 맞지 않지만 그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진실하다. 다행히 당신은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조문객들이 눈물을 닦으며 줄지어 나가기 시작하면, 왜냐하면 그런 날에는 전통 의식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9월의 늦은 오후인데도 햇볕이 놀랍도록 눈부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그때 당신은 갑자기 고통스러울 만큼 격렬한 질투를 느낄 것이다. 살아있는 당신의 친구들은 서로 포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