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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브리치 세계사(예일대 특별판) 요약 1
    내가 읽은 책/곰브리치 세계사(줄거리) 2021. 2. 2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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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옛날 옛적에

     

    오스트리아 빈의 자연사 박물관에는 디플로도쿠스라는 동물의 뼈가 전시되어있다.

     

    잠깐! 언제 적 일이라고?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이 두 가지 물음은 결국 역사에 대한 물음이다. 물론 여기서 역사란 어떤 개별적 사건의 발생이나 경과가 아닌 인간 전체의 역사, 즉 세계사를 뜻한다.

     

    2.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들

     

    원시인은 왜 동물들을 동굴 벽에 그린 것일까? 원시인들은 동물 그림을 그리면 실제로 그 동물들이 나타난다고 믿었던 것이다. 원시인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꼭 이 동물들을 잡아야 했다. 말을 하거나 곡식으로 만든 음식을 먹거나 도구를 사용하거나 불을 쬘 때면 이따금 이 원시인들을 기억해보자.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였던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자.

     

    3. 나일강의 나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집트인은 나일강을 신처럼 숭배해왔다. 이집트인들은 왕의 지배를 받았는데 최초의 왕이 바로 메네스였다. 이집트의 왕들은 파라오라 불렸다. 메네스의 후손으로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를 다스렸던 쿠푸왕은 모든 백성을 시켜 자신의 무덤을 짓게 했다. 바로 유명한 쿠푸왕의 피라미드다. 사자의 몸과 사람의 머리를 가진 스핑크스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섬긴 막강한 신이었다. 이집트인의 종교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영혼은 몸을 떠나지만 나중에 다시 몸을 필요로 하게 된다. 따라서 죽은 사람의 몸이 썩어 버리면 영혼도 존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 이집트인들의 믿음이었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사람의 몸을 보관할 수 있는 절묘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죽은 사람의 몸에 연고와 식물 즙을 바르고 기다란 천을 둘둘 마는 것으로 미라라고 한다. 이집트인들은 많은 책을 갖고 있었다. 5000년 전 한 이집트인이 파피루스에 적어놓은 경구 하나 : 지혜로운 말은 녹색의 보석보다 구하기 어렵지만 맷돌을 돌리는 가난한 하녀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3,500년 동안 이집트인들은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었으며 상형문자로 글을 썼고 똑같은 신들을 모셨다.

     

    4.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누가 일주일이란 단위를 만들고 각각의 요일에 이름을 붙인 것일까.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중요한 민족은 수메르인과 바빌로니아인 그리고 아시리아인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파피루스로 책을 만들지 않고 부드러운 점토판에 글(설형문자)을 쓰고 가마에 구워 단단하게 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지배한 바빌로니아의 왕들 중 한 사람은 거대한 비문을 남겼는데 이 비문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법전으로 함무라비 법전이라 불린다. 바빌로니아인이나 아시리아인은 태양과 달 그리고 여러 별들을 신으로 모셨다. 이들은 별들에 막강한 힘이 있으며 그 위치가 인간의 운명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을 점성술이라 한다. 이들은 몇 개의 신성한 행성들에 하루씩을 헌정했다. 신성한 별들은 태양과 달을 포함해 모두 일곱 개였기 때문에 7일을 한 묶음으로 하는 일주일이 생겨났다.

     

    5. 신은 오직 하나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 있는 드넓은 목초지에서 가축을 키우고 포도와 곡식을 재배하는 유목민들이 살았다. 이 민족은 자신들을 특별하게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하나의 신만을 모셨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이 세상에서 유일한 신이라고까지 믿게 되었다. 이들은 유일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 바로 자신들이며 이 유일신이야말로 자신들의 신이라 믿으면서 긍지를 느꼈다. 바로 유대 민족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 잔혹한 전쟁을 치러서 마침내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작은 왕국을 건설했다. 기원전 1250년경의 일로 추정된다. 유대교 사원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인 내부에는 아무런 우상도 없다. 사원 안에는 십계명을 기록한 석판만이 놓여 있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인에게 정복되어 멸망하고 말았다. 유대인은 바빌로니아 왕국이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인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 포로 생활을 했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은 다른 민족들을 우상 숭배자들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다른 민족들은 자신들이 유일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 일컬으면서 낮이고 밤이고 성서와 찬송가에만 매달리고 또 어째서 유일신께서 자신들에게 그토록 큰 고통을 주는지 고민하는 이 민족을 배척하게 되었다.

     

    6. 알파벳의 탄생

     

    이 기호를 고안해 낸 사람들은 상인이었다. 바로 페니키아인이다. 페니키아인은 먼 이국땅에 나가 있어도 고향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들이 발명한 놀랄 만큼 간편한 문자로 말이다. 이 문자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알파벳이다.

     

    7. 영웅들의 무기

     

    옛 그리스 시인들은 독특한 운율의 노래를 지어 고대 영웅의 고통과 투쟁을 이야기했다. 호메로스가 쓴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처럼.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은 이 서사시의 흔적을 찾아 도시를 파헤쳤다. 도리아인이나 아오니아인, 에올리아인으로 불린 이들 그리스 부족은 용감했다. 그리스인은 페니키아인으로부터 문자로 글을 쓰는 놀라운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써서 남겼다.

     

    8. 거인과의 싸움

     

    기원전 550년에서 500년쯤에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산악 지역에는 거친 산악 민족이 살고 있었다. 페르시아인이었다. 지혜롭고 용맹한 키루스 왕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던 자신의 민족을 구한 뒤 이집트 정벌에 나섰다. 왕은 이집트로 가는 도중 죽었지만 그의 아들인 캄비세스는 3000년 동안 지속되었던 이집트를 멸망시켰다. 다리우스 대왕은 그리스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다리우스는 아테네를 파괴하고 그리스 본토를 정복하기 위해 대규모 함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다리우스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죽고 그 후계자인 크세르크세스 왕이 100만 명의 군대를 통솔하여 그리스로 향했다. 하지만 아테네인들은 두 번씩이나 이들을 물리쳤고 이후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를 넘보지 못했다. 그리스인에게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시험하며 결코 만족하거나 안주할 줄 모르는 그들이 성격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9. 스파르타와 아테네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는 작은 반도이다. 남부에는 도리아인이 모여 살았고 북부에는 이오니아인과 에올리아인이 주로 거주했다. 그리스반도에는 도시가 저마다 국가를 이루고 있었다. 스파르타인은 기원전 1100년경 그리스반도로 이주해온 도리아인이다. 이들은 토착민을 정복해서 노예로 삼았고 자신들보다 훨씬 더 수가 많은 노예들을 두려워해서 강인해지기 위해 혹독한 교육방식을 선택했다. 아테네인들은 안락한 삶보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했다. 이들은 기원전 594년 솔론의 헌법을 도입했는데 바로 민주주의였다. 이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공통의 종교와 스포츠다. 이들은 제우스 신의 성역을 올림피아라 부르고 4년마다 모든 그리스인들이 이 경기장에 모여 솜씨를 겨뤘다. 첫 번째 올림피아 경기는 기원전 776년에 개최되었다. 그리스의 예술가들은 아주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세상의 사물을 재현해냈다. 올림피아 경기 우승자들의 입상이 그런 예다. 아크로폴리스는 오늘날까지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10. 깨달은 사람의 나라

     

    기원전 2500년경에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에는 거대한 도시가 발달해있었다. 이 도시의 이름은 모헨조다로다. 인도게르만어를 사용하는 인도인은 인도로 밀고 내려와 토착민을 복속시켰다. 이들은 토착민과 엄격히 거리를 유지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카스트 제도. 기원전 500년경에 고타마 왕자가 왕궁을 나와 6년 동안 은둔하면서 참회의 생활을 했다. 고타마는 어느 날 밤 숲 속 빈터의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있을 때 깨달음을 얻었다. 고타마는 깨달은 사람, 즉 부처가 되었고 고타마를 따르던 이들이 하나의 교단을 세웠는데 이 것이 바로 불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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