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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브리치 세계사 :예일대 특별판 (요약 2)
    내가 읽은 책/곰브리치 세계사(줄거리) 2021. 3. 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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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거대한 민족의 위대한 스승

     

    인도에서 부처가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려 하던 무렵에 중국에서도 한 위인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자 가르침을 펼쳤다. 그는 평민 출신이었고 관리이며 학자였다. 그의 목표는 사람들이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데 있었다. 공자는 수천 년간 지켜진 예절이나 관습에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믿었으며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잘 지켜 가라고 가르쳤다. 예절이나 관습을 잘 지키면 모든 일이 더 나아지리라는 것,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일이 절로 풀리리라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공자는 가족과 형제 간의 우애, 부모에 대한 공경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이를 인간됨의 근본이라 불렀다. 거의 같은 시기에 노자라는 사람도 살았다. 노자의 사상은 아주 난해하고 신비롭다. 노자는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 마음을 지극히 평온한 상태에 있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나무 한 그루나 꽃 한 송이처럼 아무 의지나 의욕도 없는 상태에 이르면 하늘을 움직이고 봄을 불러오는 도가 작용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은 이해도 어렵고 실천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중국의 위대한 스승은 노자가 아닌 공자가 되었다.

     

    12.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모험가

     

    기원전 431년부터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은 혹독한 전쟁을 벌였다. 이것이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이 와중에 그리스 북부 산악지대에 사는 마케도니아인이 끼어들었다. 필리포스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은 그리스군과 싸워 이겼고 그리스는 기원전 338년 종말을 고했다. 필리포스왕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합친 대군을 이끌고 페르시아 정벌에 나서고 싶어 했다. 그러나 전쟁 준비를 하던 중에 암살당하고 그이 아들인 알렉산드로스가 새로운 왕이 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용맹하고 명예욕이 강한 전사였으며 당시의 지식을 모두 터득한 인물이었다. 그의 스승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니키아는 물론 이집트를 정복했다. 전체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가 되었으며 나일강에서 지금의 시베리아까지 그의 명령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의 안렉산드리아와 같은 도시를 더 많이 건설하고 싶었다. 그러나 기원전 323년 그의 나이 서른둘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13. 새로운 전사들이 싸움

     

    그리스 서쪽에 있는 반도에는 거칠며 호전적인 농경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로마인이다. 로마인의 전설에 따르면 아이네아스라는 사람이 트로이에서 이탈리아로 도망쳐 왔다. 그의 후손 중에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쌍둥이가 있었는데 형제는 숲에 버려져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으며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했다. 로마의 7대 왕이자 마지막 왕인 타르퀴니우스는 폭정을 일삼았으며 귀족에 의해 살해되었다. 로마에서 왕정이 폐지된 후로는 도시 귀족들에게만 관리를 선출한 권리가 있었다. 로마의 최고 관리는 집정관이라 불렸다. 집정관은 두 명이었으며 임기는 단 1년이었다. 로마인은 마음먹으며 끝내 실현시키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땅과 법이었다. 북아프리카에 있는 페니키아의 식민 도시 중의 하나인 카르타고는 그 일대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대한 도시였다. 로마는 카르타고와 싸워 이긴 후 시칠리아를 넘겨받았다. 에스파냐에는 카르타고의 군대가 있었는데 그 사령관의 아들은 한니발이라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한니발은 자신의 조국을 억누르려는 로마인을 미워했다. 그는 코끼리 떼를 이끌고 이탈리아 땅으로 들어가 로마인들과 싸워 승리했다. 기원전 216년 로마군은 칸나이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참혹한 패배를 경험했는데 전사자만 4만 명이었다. 한니발은 14년 만에 이탈리아를 떠나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 군대와 싸운 한니발은 패배했다. 로마는 기원전 202년 카르타고를 물리쳤다. 한니발은 도주에 성공했지만 로마인의 포로가 되지 않으려 독을 먹고 자살했다. 로마인은 그리스와 북부 이탈리아도 정복했다. 로마인은 카르타고를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었다. 로마는 서양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가 되었다.

     

     

    14. 역사를 싫어한 황제

     

    진시황제는 기원전 213년 실용적이지 못한 책은 모두 태워버릴 것을 명령했다. 진시황제는 중국을 통일했을 뿐 아니라 모든 제도를 새롭게 정비한 인물이었다. 진시황제는 그 자신이 모든 것의 시초이길 원했다.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은 까닭은 자국의 백성들을 야만족에게서 보호하기 위해서다. 진시황제가 죽자 한나라가 시작되었다. 한 왕조는 진시황제가 도입한 제도들 중 좋은 것은 존속시켰고, 그 결과 중국은 더욱 강건한 통일 국가로 유지될 수 있었다. 결국 자신이 원하지 않는 책들을 세상에서 없애려 했던 진시황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 하는 사람은 옛것을 철저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15. 서양의 지배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정복한 지역들을 단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여 모든 주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정복한 나라를 로마의 속주가 되게 했고 그들 위에 군림했다. 토착민은 엄청난 조세를 지불하고 곡식도 자주 로마로 보내야했다. 로마인은 정복한 곳마다 도로와 수도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로마인 자신들을 위해서였다. 로마인은 축제를 좋아했지만 자신들이 직접 무엇을 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포로들에게 맡겼다. 포로들은 원형 경기장에 끌려나와 격투와 검투를 벌이거나 맹수와 싸웠고 전투도 치러야했다. 기원전 113, 북쪽의 호전적인 민족이 이탈리아로 침입하자 마리우스가 이들을 쫓아버렸다. 술라 역시 아프리카에서 싸워 이기고 돌아왔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술라는 기원전 79년까지 로마 제국을 지배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인의 사랑을 받는 사령관이었다. 카이사르는 프랑스를 정벌해 속주로 삼았다. 이집토 역시 로마 제국에 통합시켰다. 카이사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과 거의 같은 새로운 달력을 도입했다. 카이사르이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자 사람들은 그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기원전 44년 브루투스와 사람들에 의해 카이사르는 죽었다. 카이사르이 양자인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31년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가 되었다.

     

    16. 기쁜 소식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31년부터 서기 14년까지 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때가 바로 이 시기이다. 예수는 사람은 누구나 신의 아들딸이고, 아버지인 신의 사랑은 무한하다. 신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지만 신은 이 죄인들을 가엾게 여긴다. 신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 되려 한다는 혐의로 고발당했으며 반란자로 몰려 십자가에 못 박혔다. 당시 십자가형은 가장 치욕스러운 형벌이었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은 아주 새로운 것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신의 은총에 관한 이 기쁘고 좋은 소식은 곧 로마 제국 전체로 퍼져나갔다. 예수가 죽은 뒤 30년쯤 후 서기 60년경에 로마는 잔혹한 황제 네로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네로는 자신의 생모와 아내, 스승을 살해했을 뿐 아니라 많은 친척과 친구들을 죽였다. 그는 겁이 많았기 때문에 늘 누군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살았다. 그런데 로마에 큰 화제가 일어났다. 당시 로마는 인구가 100만명 이상인 거대 도시였다. 네로는 궁전의 발코니에서 칠현금 소리에 맞춰 직접 작곡한 노래를 불렀다. 이 소문이 들리자 평민들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네로는 속죄양을 찾았으니 바로 크리스트교도들이었다. 네로는 이들을 발견하는대로 붙잡아 잔인하게 죽였다. 순교자들은 훗날 최초의 성자들로 추앙받는다. 로마의 크리스트교도들은 대낮에 모일 수 없어서 성 바깥의 지하공동묘지 카타콤에서 비밀집회를 가졌다. 유대인은 온갖 비웃음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이교도들 사이에서 기도 학교를 열고 오랜 전통을 지키며 성서를 읽고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다렸다.

     

    17 로마 제국과 변경에서의 생활

     

    도나우강과 라인강 너머 북방에 살던 게르만족은 로마인의 골칫거리였다. 게르만족은 자신들이 터전에 가만히 머물지 않고 자꾸만 국경을 넘어와 새로운 사냥터와 경작지를 찾아다녔다. 황제는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 국경지역에 군단을 지속적으로 주둔시겼다. 변경 요새의 생활은 로마의 화려하고 편리한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도 로마와 같이 경기장과 공중목욕탕, 별장이 세워졌다. 로마 황제들은 로마의 궁전보다 국경의 주둔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트라야누스이 부대는 오늘날의 헝가리와 루마니아까지 진격했으며 이곳 역시 로마의 속주로 만들어 제국 방어를 강화시켰다. 서기 161년부터 180년까지 통치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철학자였다. 그가 전쟁터에서 쓴 일기는 주로 자제심과 인내, 고통과 슬픔을 견디는 법, 침착한 영웅적 태도 등에 관해 성찰한 내용으로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서기 313년에 크리스트교 박해를 금지했다. 서기395년부터 로마 제국은 두 개로 나뉘어졌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로마 제국과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로마 제국으로 분할된 것이다. 크리스트교는 서기 380년부터 두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크리스트교도들은 이제 지하 묘지 대신 호화로운 교회에서 모임을 가졌으며 십자가는 로마 군단의 전투 휘장으로 사용 되었다.

     

    18 천둥 번개가 치던 시대

     

    아시아 초원에 살던 기마 부족인 훈족은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들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느 부족들보다도 민첩하고 교활하고 잔인해 게르만 민족조차 이들을 피했다. 게르만족 중 일부가 라인강을 건너와 로마 군단과 싸워 이겼다. 이 시대를 게르만족 대이동의 시대라 부른다. 동게르만의 여러 부족을 아우르는 반달족은 이탈리야를 거치고 시칠리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전진했다. 로마의 군인들은 황제가 별 쓸모없다고 여겨 폐위시켰다. 로마의 마지막 황제 이름은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였고 서기 476년의 일이다. 이때부터 중세가 시작된다.

     

    19 별이 빛나는 밤

     

    중세는 암흑의 시대라고 한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나자 이들의 훌륭한 문화도 대부분 파괴되고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이것만이 중세의 전부는 아니다. 당대의 어두운 밤하늘에도 새로운 신앙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바로 수도사들이다. 이들은 선하게 살면 유일신의 구원과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많은 수도사들이 참회를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며 명상에 빠졌다. 이탈리아의 베네딕트라는 수도사는 사람이란 스스로 선해지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선한 일도 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기도하고 일하라가 그의 신조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뜻과 함께 하는 수도사들을 모아 베네딕트 수도회를 만들었다. 이 수도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선 세 가지를 서약해야 했다. 첫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 것이며, 둘째로 결혼하지 말 것이고 셋째로는 수도원장에게 무조건 복종할 것이다. 당시의 수도원은 교양과 예절이 존재하고 그리스와 로마의 정신세계가 살아 숨 쉬는 유일무이한 장소였다.

     

    20 알라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예언자다

     

    서기 600년경만해도 아랍인은 말을 타고 사막을 떠돌다 천막에서 잠을 자고 서로 싸움질을 일삼았다. 고대 바빌로니아인처럼 별을 숭배했고 무엇보다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는 카바라는 돌을 경배했다. 이 돌은 메카라는 오아시스의 한 성전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그 성전의 이름도 카바였다. 메카에는 무함마드라는 염소지기가 살았다. 그는 부유한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생활을 꾸려나갔다. 어느 날 여행을 하던 무함마드가 갑자기 환영을 보았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읽으라!‘라고 외친 것이다. 이때 무함마드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삼 년 뒤 대천사 가브리엘이 다시 나타났다. ’일어나서 경고하라, 그리고 네 주를 찬미하라이때부터 무함마드는 자신을 예언자로, 인간에게 신의 뜻을 전하는 대변자로 느꼈다. 그는 유일하고 전능하신 신이 자신을 사도로 선택했다 말하면서 메카에서 신의 가르침을 설파했다. 카바를 지키는 메카의 사제들은 무함마드를 위험한 인물로 여겼다. 감독관들은 무함마드를 대역죄로 처벌하기로 결정했다. 무함마드는 이들을 피해 사막 도시로 도피했다. 이때가 서기 622716이이고 이 도주를 아랍어로 헤지라라 부르며 무함마드의 신봉자들은 .이때를 기점으로 연도를 계산한다. 무함마드는 아랍어로 알라라 불리는 신 이외에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신의 뜻에 복종할 도리밖에 없다. ’복종은 아랍어로 이슬람인데 무함마드는 자신의 교리를 이슬람이라 불렀다. 알라와 예언자를 위해 용감히 싸우는 사람은 천국에 갈 것이지만 불신자나 비겁한 자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그는 가르쳤다. 무함마드는 그의 설교나 계시 등에서 천국을 아름답게 묘사했는데, 그러한 글 전부를 코란‘d라 묶어 부른다. 이슬람교도들은 지금도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술은 마시지 말며 언제나 용감하라는 무함마드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무함마드는 서기 632년에 세상을 떠났다.

     

     

    (21~30장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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