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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 민병일
    내가 읽은 책/리뷰 2020. 11. 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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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릿적과 몽블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대비에 혹해 과감하게 이 책을 선택했다. 다들 몽블랑 펜이 주는 묵직한 그리움 하나는 있기 마련이지. 아직도 내 가방 깊숙한 곳에는 몽블랑 볼펜심이 하나 들어있다. 정작 몽블랑 펜은 잊어버린 지 오래 됐는데 미리 사놓은 볼펜심만 남아있어 이따금 볼 때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편견이 있는 사람이다. 해서 시인이 쓴 산문은 언제나 신뢰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모호하다. 이 책의 작가도 시집을 두 권이나 낸 시인이라고 해서 문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읽었다. 역시 기대한 대로 문장이 좋았다.

     

    이 책은 지은이가 독일 유학을 떠나 미학을 공부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독일의 벼룩시장을 순례하며 발견한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은이는 벼룩시장의 물건들을 통해 그 사물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보태며 유학생활의 고달픔을 헤쳐 나갔다고 한다.

     

    나는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독일의 문화를 슬쩍 엿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을 직접 집으로 초대해 이들이 서로 만나서 그 물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지은이가 벼룩시장에서 그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소장하게 되면서 “작은 소망도 오랜 시간 마음에 품으면 현실이 된”다고 느끼며 기뻐하는 장면은 읽는 사람마저 흐뭇함에 빠지게 한다. 혹시 그 바이올린이 진품이 아니라 짝퉁이라 해도 지은이가 느낀 마음의 즐거움만은 진품 못지않았을 거라 믿는다.

     

    벼룩시장에서 곱게 치장을 하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대개 생의 책장에 남겨진 흔적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가고 있는 노인들이었다. 내가 그 나이가 되면 나도 내게 남은 사물들을 정리하며 나의 흔적들을 가볍게 하고 싶다.

     

    지은이가 “깊은 눈”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의 작품을 사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그의 예술품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몰두, 집중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그는 가난한 유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갖고 싶은 그림에 대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화상에게 부탁해 1년 할부로 이 그림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비를 포기하면서 얻게 된 그림 한 점을 통해 행복해 하는 그를 보며 사고 싶은 옷을 마침내 사놓은 뒤 옷걸이에 걸어둔 옷만 봐도 웃음이 나는 여자의 마음과 통할 거라고 짐작한다면 너무 가벼운 상상인가?

     

    숱한 사물들과의 만남을 소개한 책이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작가가 첼로의 거장을 만나면서 보여 준 감격이다. 이 책이 사물을 통해 예술을 생각해 보는 거라지만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역시 사람과의 만남이란 걸 느끼게 해준 장이다. 결국 작가가 사물을 통해 보고자 한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헌 물건 속에 깃들었던 사람에 대한 관심은 작가 역시 사람과 어울려 살고 싶은 바람이 아닐까. 작가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외로운 포스가 흠뻑 배여 있다.

     

    벼룩시장 순례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자 한 작가의 마음을 읽으며 나도 내 주변의 사물을 둘러보았다.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는 집안의 사물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보며 나의 사물들에도 내가 깃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훗날 내가 단정한 차림으로 벼룩시장에 나가 나의 사물들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내게 귀 기울여 주는 멋진 젊은이들에게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으므로 지금부터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에게 애정을 듬뿍 쏟아 붓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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