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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감상문)/ 이문열
    내가 읽은 책/리뷰 2020. 11. 1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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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영웅을 기다린다. 일부는 자신이 영웅이 된다. 영웅의 조건은 여러 가지겠지만 일반 사람들이 기다리는 영웅의 역할은 자신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실의 결핍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야말로 대중들이 영웅을 기다리는 이유다.

     

    이 책은 제목에서 영웅이 해야 할 바를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 우리들의, 일단 영웅은 우리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영웅 자신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대중들을 위해. 그런데 일그러졌다. 즉 이 책에 나오는 영웅은 대중보다는 자신을 위해 대중을 착취해서 득을 보는 찌그러진 인물이라는 거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이 찌그러진 영웅, 엄석대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순종하며 그 아래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보통 어른들이 하는 선택을 이 아이들도 한 것이다. 자신들의 것을 착취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조용한 이 시골 학교의 세계에 서울에서 전학 온 한병태의 등장은 어떤 변화를 예고한다. 적어도 지금껏 한병태가 봐온 세계의 질서에 따르면 엄석대의 전횡은 학급 아이들의 무지와 담임선생님의 방치에서 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한병태는 자신이 일시에 엄석대를 엄단함으로써 아이들을 엄석대의 폭압에서 구해내고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는 영웅의 의지를 내보인다.

     

    그러나 엄석대에게 대항하기에는 한병태의 자아가 너무나 유약했고, 대중을 위해 일어서야 하는 영웅이 되기에는 한병태의 이기심은 너무나 컸다. 한병태는 차선책으로 영웅의 발아래 엎드려 그가 베푸는 시혜에 흠뻑 몸을 적시는 달콤한 측근이 되어버린다.

     

    엄석대의 시대가 끝나는 것은 젊은 교사, 새로운 담임에 의해서였다. 여기서 대중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 시골 학교 아이들의 모습, 이 유연한 대처가 놀랍다. 아이들은 담임과 엄석대의 힘을 저울질해본 다음 담임의 힘이 더 세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바로 엄석대에게 등을 돌린다. 한병태는 그런 아이들을 멸시하며 엄석대의 비리를 담임에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일반 아이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임을 과시한다.

     

    이 책에서 가장 속물적인 인물,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 한병태라는 사실, 그리고 그 한병태야말로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임을 알려주는 이 책은 그래서 불편하다.

     

    한병태가 학교를 떠난 엄석대를 간간히 기억하며 그저 그런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로또처럼 기대하는 것은 우연히, 그러면서도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엄석대와의 재회다. 엄석대를 만나기만 하면 자신이 가진 구질구질한 일상을 한꺼번에 만회하며 영웅이 주는 시혜 속으로 다시 한번 풍덩 빠져드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석대가 경찰에게 잡히는 모습을 본 순간 한병태의 꿈은 손안의 모래알처럼 사라져 버린다.. 한병태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여전히 자신에게 시혜를 듬뿍 내려 줄 어떤 영웅을 기대하며 말이다.

     

    오늘 신문에도 여전히 영웅을 기다리는 대중들의 바람이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병태의 모습으로, 아버지의 모습으로, 담임의 모습으로 반 아이들의 모습으로. 기다리는 양상은 다를지라도 영웅에게 바라는 기대감은 한 가지. 우리 모두를 잘 살게 해 주세요~~ 다.

     

    환하게 떠오른 보름달처럼 반듯한 영웅을 맞이하려면 우리 스스로 반듯한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만 혜택을 바라는 이기심을 버리고 우리 모두, 영웅인 당신까지도 즐겁고 행복한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그런 멋진 사회.

     

    그러기 위해선 모두가 작은 영웅이 되어야겠지. 영웅의 첫째 조건인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모이고 모여 커다란 영웅의 나라가 된다면. 그럼 한 사람의 위대한 영웅이 자신을 포기하면서 베푸는 혜택에 기대지 않고도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복지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누군가 슈퍼맨처럼 혼자서 이리저리 나라를 구하겠다고 등장하면 열광하기에 앞서 그의 노고에 감사하며 그의 생활도 배려할 줄 하는 성숙한 대중. 그런 대중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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