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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내가 읽은 책/리뷰 2020. 11. 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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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한 번쯤 무인도에 가져 갈 세 가지 물건을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무인도. 사람이 살지 않는 섬. 사방은 바다. 막막함. 그 때 나를 달래 줄 그 무엇이 뭐냐고 묻는 말. 무인도에 가져 갈 세 가지가 당신에겐 무엇입니까?

    막막함을 느끼는 곳이 무인도라면 그 무인도는 어쩌면 바다 한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게 아닐까. 도시의 건물 안에서나 농촌의 논밭 한 가운데, 숲길 어디에서든 막막함이 몰려드는 때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무인도가 아닌지. 살아가면서 시시때때로 무인도처럼 나타나는 막막함을 우리는 무엇으로 이겨낼 것인가.

    조선시대 문인이며 실학자였던 이덕무에게 세상은 늘 무인도였다.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곳을 바라봐야만 하는 서자의 운명 외에도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가난과 건강하지 못한 몸은 이덕무를 둘러싼 괴로움의 바다였다. 그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서 막막함을 이겨낼 힘으로 이덕무가 선택한 것은 독서였다. 그는 스스로 “책만 보는 바보”라고 인정할 만큼 독서에 집중했는데, 훗날 자신과 같은 괴로움을 견뎌야할 이를 위로하기 위해 독서를 통해서 얻은 이로움을 네 가지로 정리해 놓았다. - 책을 읽으면 굶주림을 잊을 수 있고 추위를 잊을 수 있고 근심걱정마저 잊을 수 있다. 또 책을 낭랑히 읽으면 지병인 기침병까지 잠시 멈출 수 있으니 책을 읽지 않고 무엇을 할 것인가. -

     

    반쪽 양반인 서자로 태어난 이덕무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과 취미삼아 밀랍을 이용해 매화를 만들어 벗들과 즐기는 것뿐이었다. 그는 자식이 굶주려 누워있어도 경제활동을 할 수없는 울분을 독서로 달래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능하기 그지없는 가장이라고 비난받아야 할 처지지만, 당시 유교문화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시간과 장소에 큰 구애를 받지 않으면서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독서다. 이덕무는 바보스러울 만큼 독서에 매진 한 덕분에 평생 동안 마음을 나누었던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백동수 같은 친구를 사귀고, 자신을 알아준 좋은 스승인 홍대용과 박지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서자 신분으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임금의 부름을 받게 된 것도 독서를 통해서 얻은 학식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덕분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기쁨이다. 그러나 이덕무는 자식이 자라는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봐야했다. 자신이 물려받은 신분을 고스란히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물려줘야하는 현실. 자식에게 어두운 미래를 물려줘야하는 부모의 심정은 말로선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덕무가 청나라 사신 일행을 따라 연경을 다녀온 후 정조임금님의 부름을 받아 규장각 검서관이 되고, 경기도 적성의 현감이 되면서 아이들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늘은 저절로 벗겨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덕무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아이들의 미래를 그려보는 일로 가슴이 벅차다. 부모가 되어 아이의 미래를 안타깝게 바라봐야했던 이덕무의 조바심이 내 일처럼 느껴져서 가슴 뭉클했던 장면이다. 자신의 아비가 조선의 영토 안에서 웅크리고 살았다면 자신은 조선을 떠나 청나라 연경까지 나아갔고, 아이들의 미래는 그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부모로서 어찌 벅차고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까. 실제로 이덕무의 손자인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백과사전을 써서 이수광의『지봉유설』을 확대하고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학자로 이름을 남겼다.

     

    졸업을 앞두고 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이 가슴 안에 가득 차 있을 아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어느 시대건 젊음이 만족스러운 때는 없었다고 본다. 그래도 지금은 좋은 시절이지 않은가. 이덕무처럼 신분에 묶이지도 않았고,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살 수 있으니까. 아들에게 이덕무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든 실망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배우라고 하고 싶다. 만약 이덕무가 자신의 신분에 불만을 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신세한탄만 했다면 어찌되었을까? 좋은 기회가 와도 그를 비껴갈 것이다. 실제로 많은 서자들은 자신의 신분을 원망하며 술과 노름으로 현실을 잊고자 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현재도 다르지 않다. 대다수의 청년들이 사회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힘들어한다. 취업재수는 필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청년들의 일자리 구하기가 치열하다. 그렇다고 포기해버리면 그 자리는 점점 멀어질 뿐이다. 준비된 사람에겐 위기가 바로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아들처럼 사회생활을 눈앞에 두고 있는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꼭 책을 통해서가아니더라도 자신의 막막함을 기댈 그 무엇을 각자가 한 가지씩 붙잡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돌이켜보면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 젊은 한 때 질풍노도의 시절이 있었고, 세상 속을 헤매면서 사막을 걷는 것처럼 목이 탈 때가 있었다. 그럴 때 펼친 책 속에는 세상 모든 공간을 품은 듯 넓은 세계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고, 위로와 지혜가 샘처럼 솟고 있었다. 스스로 찾아서 읽은 책은 내게도 좋은 벗이 되어주었고 상담자가 되었고 안내자가 돼주었다. 다른 모든 독서가들처럼. 그러나 그 무엇보다 좋은 건 독서를 통해 얻게 된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다. 내가 세상에 내세울 것이 무엇인가. 잘난 것이 무엇인가. 한참을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다만 한 가지, 나라는 인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거. 나 스스로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거. 나 역시 다른 사람처럼 소중한 존재라는 걸 오랜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걸로 괜찮지 않은가. 살면서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막막함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내가 나를 사랑하게 해 주는 것. 이것만으로도 독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해서 나의 독서는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이다. 혹시 누가 내게도 ‘간서치’라고 불러준다면 환한 웃음으로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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