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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내가 읽은 책/리뷰 2020. 11. 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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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에 썼던 글이어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당시 1박 2일의 열렬한 애청자로 갑자기 불거진 강호동 하차를 이 책과 연계해 쓰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되살아나 공유하고자 합니다.)

     

    KBS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은 국민예능이란 칭송을 들으며 오랫동안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5년째 승승장구 중이던 이 프로그램이 최근 여론의 태풍에 휩싸이게 된 것은 메인 MC 역할을 하던 강호동 씨의 하차의사 때문이다. 국민예능프로그램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한동안 이 소식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일부는 강호동의 하차의사가 타당하다는 의견이었다.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충분히 프로그램을 위해 노력했고, 또 프로그램이 잘 될 때 하차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만큼 안주하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를 높게 사야 할뿐더러 무엇보다 하차할 수 있는 자유가 그에게 있는 만큼 이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다.

     

    하지만 하차의사를 밝힌 강호동 씨에게 배신이라는 말로 비난을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국민MC의 이미지를 안겨준 프로그램을 중도에 그만둔다는 것은 책임 있는 행동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에서 여러 차례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유독 강호동 하차설이 논란이 된 것은 강호동 씨 개인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입증한다. 1박 2일은 강호동 씨와 다른 멤버들이 형제처럼 끈끈한 우정을 다지며 재미와 감동을 추구하여 국민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인데 강호동 씨가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중도에 프로그램을 하차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든 개인의 이익을 위해 프로그램을 버린다는 시각이 깔려있는 경우다. 이런 논란이 이는 동안 나는 이 책을 읽고 있었고, 그래서 만약 이 책에 나오는 철학자들이 이 문제 앞에 선다면 어떤 결론을 끌어낼 것인가가 궁금했다.

     

    공리주의를 주창한 영국의 철학자 벤담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강호동 씨의 하차 의사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공리주의의 핵심은 고통을 싫어하고 쾌락을 좋아하는 공리를 극대화하는 것을 도덕의 최고 원칙으로 심는다. 당연히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둔다면 강호동 씨는 동시간대 시청률 부동의 1위인 12일의 하차를 언급하지 말아야 했다. 개인의 체력 방전이나 미래보다는 수많은 국민들의 웃음과 행복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공리주의자의 주장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반론에 부딪힌다.

     

    우리에게 <순수이성비판>으로 유명한 칸트는 공리주의를 비판했다. 칸트는 어떤 행동에 있어서 도덕적 가치는 그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도덕적 가치가 부족한 것이며 선행을 했을 때조차 그 행동의 동기에 쾌락이 들어간다면 칭찬과 격려를 받을지언정 도덕적으로는 존중할 수 없다고 보았다. 선행에 있어서 도덕적 가치를 인정받을 때는 자신이 하는 선행의 행동이 옳기 때문에 행한 것이지 자신에게 돌아올 어떤 자부심이나 뿌듯함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 선행조차 도덕적 가치로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칸트가 강호동 씨의 하차 여부를 두고 의견을 보인다면 아마도 강호동 씨의 하차 동기에 집중했을 것이다. 그가 과연 체력소모와 피로도가 극에 달해 하차의사를 내보인 것인지 일부에서 말한 종합편성 채널로 가기 위한 수순으로 하차의사를 밝혔는지를 먼저 살필 것이다. 그런 뒤, 강호동 씨 역시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므로 수단에 불과한 예능프로그램보다는 그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쪽으로 의견을 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를 고민하는 올바른 방법은 원칙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무지의 장막- 선택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일이라고 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기본권을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이 원칙에 동의한다면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에 한해서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는 차등원칙에 동의해 달라고 했다. 이 차등원칙은 재능 있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재능과 소질의 불공정한 분배를 바로 잡는 것이며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면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우리 모두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보살펴줄 줄 아는 최선의 도덕적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존 롤스의 무지의 장막을 이용한다면 강호동 씨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신이 강호동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강호동 개인에게는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한 선택이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의 목적은 좋은 시민을 양성하고 좋은 자질을 배양하면서 결국은 좋은 삶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지도자는 최고의 결정을 할 자질과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플루트의 목적은 뛰어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이 목적을 가장 훌륭히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플루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강호동 씨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웃음을 주는 것이고 그 웃음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최고의 프로그램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특급 코미디언 강호동 씨의 길을 누구도 막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정의로운 사회는 좋은 삶을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기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는 것이라고 했다. 또 공동선을 위해서는 희생과 봉사가 필수적이며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불평등과 연대 의식, 시민의 미덕에 대해 고민하며 도덕정치를 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언제든 좀 더 나은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정의로운 시민들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강호동 씨와 1박2일의 다른 멤버들과 제작진은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이 일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그들은 당연히 그렇게 했고 결론이 났다. 한 달 안에 프로그램을 하차한다고 의사를 밝혔던 강호동 씨와, 그의 하차 여부에 관계없이 프로그램이 폐지되지 않기를 바랐던 다른 멤버들과 KBS 제작진이 협의한 결과 앞으로 6개월 동안 열심히 프로그램을 찍은 후 멤버모두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면서 1박2일을 폐지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5년 동안 빠짐없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그들의 이런 선택이 공동선을 위해 모두를 배려하며 서로가 희생과 양보한 결과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이렇게나마 강호동 씨의 하차설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읽은 덕분이다. 사실 이 책이 어렵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수많은 사례들은 적절하게 인용되었고 내용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접하게 되는 철학자들의 세계에 독자인 내가 너무 무지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오직 저자의 지식에 의지해 따라가다 보니 과연 저자가 말하는 대로 철학자들의 생각이 이러할까라는 답답함이 들었다. 또 저자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방식과 상당한 차이점이 날수밖에 없는데 그런 부분들이 독서를 방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후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정의라는 낱말을 떠올리게 된 것은 분명 이 책의 미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덕이 깃든 행동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런 행동이 몸에 밴다고 했다. 이 책을 접하면서 도덕과 정의에 대한 작은 실천이라도 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수백 번 다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의 실천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실천하다 보면 몸에 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마음은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변명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9장에 나오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인간은 서사적 존재이므로 내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정체성이 형성된 공동체에 속한다는 주장은 나를 넓은 역사의 세계로 이끌었다.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 자발적 존재이지만 세대와 세대가 연결되어 역사를 이루는 우리들의 삶은 결코 개인적이 될 수 없으며 어떤 경우에든 연대감을 갖는다는 부분을 읽을 때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꼈다. 내가 결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개인이 아니라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선분 속의 하나라는 사실은 많은 위안을 준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무로 연관된 존재이며 그러기에 인격을 갖춘다는 것은 여러 부담을 인식하며 산다는 뜻이라는 말 속에서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연대감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낀다.

     

    우리 모두는 정의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고 또 모든 사람이 정의롭기를 희망한다. 그 정의라는 것은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는 그 누구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 책을 덮으며 느낀 점이다. 수많은 도덕적 사례 앞에서 나의 행위에 대한 확신과 그 근거가 되는 원칙을 적용해보고 반박의 상황을 고려해보며 결론에 다다르게 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출발점이며 더 나은 삶을 목표로 하는 민주시민의 갈 길이라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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