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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 유홍준
    내가 읽은 시/내가 읽은 시집 2020. 12. 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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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제시

     

    대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

     

    대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가 먼 데를 바라보고 있다

     

    대나무 우듬지가 요렇게 살짝 휘어져 있다

     

    저렇게 조그만 것이 앉아도 휘어지는 것이 있다 저렇게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것이 있다

     

    새는 보름달 속에 들어가 있다

     

    머리가 둥글고, 부리가 쫑긋하고, 날개를 다 접은 새다 몸집이 작고 검은 새다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

     

    창문 앞에 앉아

    나는 외톨이가 된 까닭을 생각한다

     

    캄캄하다, 대나무 꼭대기를 거머쥐고 있던 발가락을 펴고 날아가는 새

     

     

    기억하고 싶은 시

     

    창틀 밑 하얀 운동화

     

    생각이 많을 때마다 나는

    운동화를 빠네

     

    낙엽을 밟고 오물을 밟고 바닥 밑의 바닥을 밟고 다닌 기억들아

     

    깨끗이 빨아놓은 운동화 뒤꿈치에는 물이 고이네

    생각의 뒤꿈치에는 늘

    물이 고여있네

     

    나는 지금 맨발, 발가락 끝에 슬리퍼 걸치고

    축담에 앉아

    하얀 운동화나 바라보네

     

    운동화는 고요하고

    운동화는 단정하고

    많은 말들을 감추고 있네

     

    신발을 씻었는데 손이 왜

    깨끗해졌는지,

     

    할 말이 없는데, 할 말이 무엇인지

    다 잃어버렸는데

    내 생각의 뒤꿈치에는 자꾸만 물이 고이네

     

    생각의 뒤꿈치에 고인 물이 다 말라야 운동화는 제대로 마른 거라네

     

     

                                                    시인의 말

     

     

     

       제지공장을 지나 정신병원을 지나 북천을 지나

                              백정의 마을 섭천에 와 있다.

     

    말수도 줄고, 웃음도 줄고, 술도 줄고, 시도 줄었다.

     

                                         더욱 더 또렷해진 건

                                                       내 무서운

                                                          눈빛뿐,

     

                                                    2020년 5월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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