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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내가 읽은 시/내가 읽은 시집 2020. 11. 23. 11:25728x90
표제 시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네
요를 깔고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네
한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하네
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
당신은 아무런 표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네
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네
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네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
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
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
기억하고 싶은 시
우리는가볍게 웃었다
시골길을 가다 차를 멈추었다
백발의 노인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노은은 초조한 기색이 없었다
나무의 뿌리가 뻗어나가는 속도만큼
천천히 건너갈 뿐이었다
그런다 노인은 내 쪽을 한번 보더니
굴러가는 큰 바퀴의 움직임을 본떠
팔을 내두르는 시늉을 했다
노인의 걸음이 빨라지지는 않았다
눈이 다시 마주쳤을 때
우리는 가볍게 웃었다
시인의 말
세해동안 쓴 것을 이렇게 한 권으로 묶으니 나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홀가분하다.
시에게 간소한 언어의 옷을 입혀보려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지 않았나 싶다. 대상과 세계에서 솔직한 말을 걸고 싶었다. 둘러대지 말고 짧게 선명하게.
시련이 왔었지만 회복되었다. 빚진 인연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시를 쓰는 일이 다시 내 앞에 있다.
2015년 4월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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