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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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 민병일내가 읽은 책/리뷰 2020. 11. 5. 20:03
고릿적과 몽블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대비에 혹해 과감하게 이 책을 선택했다. 다들 몽블랑 펜이 주는 묵직한 그리움 하나는 있기 마련이지. 아직도 내 가방 깊숙한 곳에는 몽블랑 볼펜심이 하나 들어있다. 정작 몽블랑 펜은 잊어버린 지 오래 됐는데 미리 사놓은 볼펜심만 남아있어 이따금 볼 때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편견이 있는 사람이다. 해서 시인이 쓴 산문은 언제나 신뢰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모호하다. 이 책의 작가도 시집을 두 권이나 낸 시인이라고 해서 문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읽었다. 역시 기대한 대로 문장이 좋았다. 이 책은 지은이가 독일 유학을 떠나 미학을 공부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독일의 벼룩시장을 순례하며 발견한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은이는 벼룩시장의 물건들을 통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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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의 거미줄/엘윈 브룩스 화이트내가 읽은 책/리뷰 2020. 11. 4. 21:52
샬롯의 거미줄을 다시 읽었다. 예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우정의 거미줄"로 출판 된 것을 읽은 적이 있고, 그 후 몇 년 전에 이 책의 내용을 영화로 제작한 것을 보았다.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모르겠다. 아이들 책을 쭉 읽을 때면 성인용 책을 읽고 싶고, 성인용 책에 지칠 때면 어김없이 어린이 책에 손이 간다. 펀도 변덕스럽기는 나와 다르지 않다. 이 책의 시작은 펀이 무녀리 돼지인 윌버를 살리면서 시작된다. 어른들에게는 별 소용없어 보이는 무녀리 돼지지만 어린 펀에게는 자신과 똑같은 생명을 가진 소중한 존재였다. 단지 약하다는 이유로 죽어야 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아버지를 졸라서 윌버의 생명을 살린 펀. 그러나 그 펀도 머지않아 자신이 돼지 따위에게 관심을 가진 일을 부끄러워하고 유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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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내가 읽은 책/리뷰 2020. 11. 3. 18:53
(2011년에 썼던 글이어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당시 1박 2일의 열렬한 애청자로 갑자기 불거진 강호동 하차를 이 책과 연계해 쓰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되살아나 공유하고자 합니다.) KBS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은 국민예능이란 칭송을 들으며 오랫동안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5년째 승승장구 중이던 이 프로그램이 최근 여론의 태풍에 휩싸이게 된 것은 메인 MC 역할을 하던 강호동 씨의 하차의사 때문이다. 국민예능프로그램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한동안 이 소식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일부는 강호동의 하차의사가 타당하다는 의견이었다.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충분히 프로그램을 위해 노력했고, 또 프로그램이 잘 될 때 하차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만큼 안주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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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안소영내가 읽은 책/리뷰 2020. 11. 2. 21:37
누구나 한 번쯤 무인도에 가져 갈 세 가지 물건을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무인도. 사람이 살지 않는 섬. 사방은 바다. 막막함. 그 때 나를 달래 줄 그 무엇이 뭐냐고 묻는 말. 무인도에 가져 갈 세 가지가 당신에겐 무엇입니까? 막막함을 느끼는 곳이 무인도라면 그 무인도는 어쩌면 바다 한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게 아닐까. 도시의 건물 안에서나 농촌의 논밭 한 가운데, 숲길 어디에서든 막막함이 몰려드는 때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무인도가 아닌지. 살아가면서 시시때때로 무인도처럼 나타나는 막막함을 우리는 무엇으로 이겨낼 것인가. 조선시대 문인이며 실학자였던 이덕무에게 세상은 늘 무인도였다.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곳을 바라봐야만 하는 서자의 운명 외에도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가난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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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바틀비 이야기 /허만 멜빌내가 읽은 책/리뷰 2020. 10. 22. 12:26
'필경사 바틀비'에 대한 짧은 이야기. 모비 딕의 저자 허만 멜빌 작품이다. 도서관에서 빌렸더니 최신작이 아니라 무려 1999년 도서출판 문화사랑의 초판 발행본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 출판사 아직 무사할까? 이 책을 정성껏 번역한 이기홍 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은 바틀비가 자신을 고용한 변호사에게 하는 짧은 말이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문장인가! 특히 그 사람이 나를 고용한 '갑'일 때는. 나 역시 힘에 부치는 노동은 하고 싶지 않고 무례한 사람에게는 더 무례하게 갚아주고 싶고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조언하는 사람에겐 그만두라고 소리치고 싶다. 하지만 참는다. 일상이 무사히 돌아가기 위해선 내가 참아야 할 일들은 많고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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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쏘공, 거인들의몰락(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조건)내가 읽은 책/리뷰 2020. 10. 9. 15:27
얼마 전에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으며 접어놓은 구절이 있었다. 그땐 그렇게만 하고 지나쳤는데 오늘 켄 폴릿의 ≪거인들의 몰락 2≫에서 비슷한 내용을 보니 뭔가 정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내용은 많을 것이고 모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문제 처리에 급급하다 보면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잊어버릴 수 있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그 세계의 지배계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했었다.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 그들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213쪽 중) 편안한 만족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