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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내가 읽은 시/내가 읽은 시집 2021. 1. 2. 20:05728x90
표제시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기억하고 싶은 시
만년필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나 구름을 걸어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 대가리 눈 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공원묘지의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주거나 가끔씩 때늦은 후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오후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카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 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본다-만녀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르 짓앃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힌다-이런 수사는 모두 고통스런 지난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딍굴어 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념에 젖기도 하는것이다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시인의 말
지난 십여 년간 쓴 시들을 모아
네번째 시집을 엮는다
작품을 정리하다 보니
꽃을 소재로 한 시가 여러 편이다
고운 봄날
이 거친 시집을
꽃 피는 시집으로 잘못 알고
찾아오는 나비에게
오래 머물다 가진 마시라고 해야겠다
2009년 5월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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