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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복 : 어둠 속의 시
    내가 읽은 시/내가 읽은 시집 2020. 12. 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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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부터 1985년까지 씌어진 이 시들은 , 첫 시집 《딍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와 두 번째 시집 《남해 금산》의 시들과 같은 아궁이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대부분 발표되지 않은 시들이지만, 발표된 뒤 당시의 여러 사정으로 간행되지 못한 시들도 다수 있다. 이 시집은 앞선 두 시집과 겨합하여 하나의 '퍼즐' 혹은 부절을 이루는 것으로, 이로써 참담했던 한 시절이 온전히 되살아나게 되었다. 깊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시들을 고이 닦고 감싸 아름다운 책으로 염해주신 열화당께 감사드린다.

     

    2014년 7월

    이성복

     

    기억에 남는 시

     

    중학생

     

    중학생들은 어디로 가는가. 학교를 파한 애늙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중학생의 처들은 어디에 있는가.

    중학생들은 입을 가리고 웃는다. 중학생들은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중학생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쌍욕을 한다. 저런 자식들을 둔 부모는 행복하리라. 우리 모두 행복하다. 중학생들은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중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중학생 교복은 지금 횃대에 걸려 있는가. 중학생들은 언제 졸업하는가.

    누가 일등을 하고, 누가 꼴찌를 도맡아 하는가. 중학생들의 처들은 언제 아기를 갖는가.

     

    중학생들이 사라진 공원에 나는 뒤늦게 입장한다. 중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진 밤에

    우리의 꿈과 사랑을 탕진한 중학생들에게 나는 일장 연설을 한다. 사랑하는 중학생들이여.

    너희는 지금쯤 골방에 틀어박혀 영어책을 세워 놓고 수음을 하고 있겠구나.

    중학생 제군, 그리곤 곧 잠이 오겠지. 너희들은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노파들

     

    노파들, 건어물 시장 앞에서 버스를 탈 때부터 나는

    그들을 알아보았다 비린내 진동하는 방티를 이고

    차장의 성화에는 아랑곳없이 기걸 들린 잡귀처럼

    올라타던 그들, 올라서는 비좁은 차 안을 밀고 들어와

    방티 위에 타고 앉아 꾸벅꾸벅 조는 그들, 이따금

    잠이 깨면 허리춤에 쑤셔 넣은 꽁초를 꺼내 물고

    악취 진동하는 연기를 내뿜지만, 행여 빈자리라도

    생기면 고래고래 소리 질러 일행을 불러 모으는

    그들, 방티 속에 포개 놓은 생선들처럼 그들이

    깊은 잠에 빠질 때 안심하고 나는 물어본다, 삶이

    얼마나 비리기에 아직도 그들 몸에서 생선 냄새가

    나는가 어째서 그들 옆구리는 복개 안 된 시궁창처럼

    맨살이 드러나는가 그들 자식들은 무얼 하고 있는가

    그들은 지금 자식 공부 안 시킨 죗값이라도 하는가

    무슨 수로 자식 공부를 시켰을 것인가, 수백 가지

    의문에 휩싸여 나는 차비도 안 주고 내릴 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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