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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의 작업실/박영택
    내가 읽은 책/리뷰 2020. 12. 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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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미술평론가 박영택이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소개할 작가들을 알기 위해 방문한 작가들의 작업실 방문기다. 열두 명 작가의 작업실을 소개하고 있는데 누구의 작업실이든 내가 생각한 작가의 작업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은이가 작가의 작업실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안타까워 한 부분은 작업실 대여 비용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분들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알아주는 작가들인데 그분들조차 작업실 마련하는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할 정도였다. 이러니 셀 수 없이 많은 작가들이 오늘도 자신들의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이리 저리 헤맬 것은 당연하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을 수많은 작가들이 열정 뿐만 아니라 사회적 대우도 적절하게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미술작가의 작업실이란 평소 내가 생각하던 작가의 작업실하면 떠오르는 그런 고상한 이미지가 한 군데도 없었다. 앞으로 나는 누가 작가의 작업실에 가보자고 하면 아마 공장을 떠올릴 것이다. 그게 공장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철을 자르고 용접하고, 고무를 깎고 돌을 두들기고 못을 박고.

     

    표지에 나오는 홍정희의 작업실엔 의자가 없다고 한다. 의자가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쉬고 싶기 때문에 아예 작업실에 의자를 없애버린 것이 그녀가 작업실에 도착해서 빠져나갈 동안 작업에만 완전히 몰두하기 위한 작은 장치라고 한다. 작업실 바닥은 피칠갑을 한 듯 온통 붉게 물들어있다. 유화물감 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이곳에서 어떤 생각도 없이 작업에만 몰두하는 작가 홍정희는 작품에 완전히 미쳐있다. 이럴 때 미쳤다는 표현이 없었다면 도대체 어떤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이 책을 보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 바로 미쳤다라는 이 말이다. 청소할 시간에 작품에 덧칠 하나 하는 게 중요하다는 작가의 작업실의 강렬함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것도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모나미153볼펜으로 신문지에 선을 긋는, 그 지루하고 단순한 반복만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의 모습을 봤을 때 얼른 든 생각이다. 이건 그야말로 단순노동작업이다. 하지만 미술평론가 박영택이 거금을 주고 산 작품이 작가 최병소의 검은 신문지 작품이라고 하니 예술의 세계는 정말 알 수 없는 심연이다. 예술가란 끝까지 가는 사람들이고 최병소 화백의 신문지 작업은 그 끝의 끝까지 가는 작업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도 그게 잘 이해되지가 않으니 예술은 내게 있어서 그야말로 구름 위의 집인가 보다.

     

    박용남 작가의 돌 작업실은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게 하는 작가의 의도를 가장 잘 읽을 수 있어 마음 편하게 들여다 본 작업실이다. 작가의 작업실 앞에 커다랗게 조각 된 단추하나가 앞으로 볼 작업실의 맨 몸을 보여줄 단초 구실을 하는 셈이다. 마치 거인국에 온 것처럼 놓여있는 대리석 단추 하나.

     

    작가의 작업실은 공장의 모습 그대로다. 쌓여있는 조각의 재료인 대리석들과 그 것을 다듬고 자를 도구들은 도무지 예술의 무엇과도 닿아있지 않을 만큼 낯설다. 그러나 이런 무지막지한 작업실에서 탄생한 것이 돌로 깎아 만든 풍선이라니, 김밥이라니, 족발이라니. 우리 주변의 익숙한 물건을 그 형태 그대도 만들어져 있는 모습은 너무나 익숙하다. 새로울 것 없는 작품들인데 그 소재가 돌이다. 사람들의 생각까지 깨뜨리며 작업하는 그의 예술 세계가 너무 예쁘고 앙증맞아서 오랫동안 들여다 본 그의 작품 사진들. 배추 잎 하나, 케잌 한 조각, 팝콘 한 개가 돌의 세계에서 그토록 말끔하게 탄생하다니.

     

    내가 꼭 직접 보고 싶은 작품은 작가 유봉상의 못 작품들이었다. 못을 박아서 빛의 강약을 조절해서 작품을 만드는 그의 작업실은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상상 조차 허용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어떻게 못으로 빛을 만들지? 물결치는 파도를? 모든 작업실이 기묘했지만 내가 가보고 싶은 작업실은 바로 이 곳이었다. 사진으로는 작품의 일부분 조차 허용하지 않는 못의 작품 앞에 서면 어떤 커다란 감동이 확 밀려올 것 같은, 그래서 이 작품만은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 두 작업실의 색깔은 작가의 개성만큼이나 독특하다.

    책을 덮으며, 아니 덮기 전에 내가 한 생각. , 미쳤어. 제 정신이 아니야. 왜 그러고들 살아?

    작품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작가들이 바치는 열정과 노력은 장인 정신 그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님을 알려주는 작가들의 작업실 순례기다.

     

    예술은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보게 되는 예술은 완성된 작품이고 그 앞에서 찬탄이든, 아쉬움이든 뭐든 한마디 하며 지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이런 게 예술 이야? 말도 안돼! 나는 앞으로 어떤 예술이든 최소한 함부로 지나가거나 폄하의 말을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덮었다. 다시 펼쳐보게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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