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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태백산맥(조정래)줄거리 : 10권
    내가 읽은 책/태백산맥(조정래) 줄거리 2021. 1. 2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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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대치와 이해룡은 비무장대원을 이끌고 지리산 피아골로 들어섰다. 지리산지구 부사령관이 된 이해룡은 예전 염상진과의 지리산 도피 생활을 되새긴다. 지리산 가을 독사는 보신에 좋다고 소문이 나있어 그들의 월동준비를 도와주었다. 부대를 지휘하는 이해룡의 모습을 본 하대치는 그의 얼굴에서 염상진을 느낀다. 지리산은 어느새 빨치산 삼사천 명이 골짜기마다 퍼져있었다. 하대치는 비무장대원 이동 임무를 마친 뒤 이해룡과 헤어져 씨름대회가 열리는 달궁골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이현상과 김범준을 비롯한 각 도당위원장들이 모여 있다.

     

    각 지구는 무장병력을 중심으로 정예화되었다. 남아있는 비무장대원들은 후방부 사업에 필요한 인원들뿐이었다. 산악 이동투쟁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기동성을 갖춘 것이었다.

    전투력의 정비완료와 함께 총사에서 각 지구에 내린 지령은 철도 파괴와 열차 습격 그리고 교량 파괴였다. 그런 적극적인 전략은 주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엔군의 대공세와 휴전회담에 맞걸려 있었다. 후방을 강하게 교란시켜 적의 병력을 뒤로 유인함으로써 주전선의 공격을 둔화시키자는 빨치산 본연의 임무수행이었다. (37)

     

    염상진은 지난 9월 지리산에서 열린 6개 도당회의 결과에 실망하며서 이현상에 대해선 의문을 품는다. 이현상의 결정에 납득할 수 없는 염상진은 그에 대한 믿음에 금이가고 있음을 느끼고 마음이 어지럽다. 양효석은 야간전투에서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소령 진급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

     

    빨치산의 달라진 전술에 따라 10월 한 달 동안 전남북 일대의 후방교란은 도처에서 일어났다. 특히 철도 파괴와 열차 기습, 교랑 파괴가 두드러졌다. 11월 2일에 전라북도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것은 바로 그러한 상황변화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전라북도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고 하지만 그 영향은 전라남도에도 똑같이 미치고 있었다. 그건 전라남, 북도당의빨치산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77)

     

    월동준비에 열중하고 있던 이해룡은 병력을 지리산에서 이동시키라는 도당의 지시를 받고 당황한다. 섬진강을 건너기 위한 정찰에 김범준도 참가한다.

     

    12월 1일 마침내 부산 대구를 제외한 각 지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12월 2일 서남지구 공비토벌작전이 개시되었다.

     

    눈 덮인 지리산 골짜기마다 박격포탄들이 작렬해 대기 시작했다. 박격포탄은 한꺼번에 열댓 발씩 날아와 아무 데서나 마구 터져올랐다. 포탄들이 여기저기서 쥘부채를 확확 펼치는 것처럼 빛살을 뿌려대며 터져 오를 때마다 폭음이 진동해 산을 흔들어댔고, 그 소리들은 겹겹인 지리산의 봉우리 봉우리들을 울려대며 겹메아리를 만들어냈고, 포탄들은 한 골짜기에서만 터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골짜기에서 한꺼번에 터지고 있어서 폭음은 폭음끼리 부딪치고, 메아리는 메아리끼리 부딪쳐 지리산의 골짜기 골짜기들은 곧 무너져내릴 것처럼 뒤흔들리고 있었다.(93)

     

    매일 삐라는 뿌려지고, 날씨는 더욱더 혹독해져가고, 토벌대의 수색을 피해 샛골짜기들을 끝없이 헤매고, 눈을 뭉쳐 먹고 한 끼, 소금을 찍어서 먹고 또 한 끼,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기진맥진되어 가고 있는 어느 날 토벌대들은 꼭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작전이 끝난 것이었다.(102)

     

    12월 19일 전남도당은 백운산지구에서부터 백아산지구까지 일시에 공격을 당하게 되었다. 지리산에서 빠진 수도사단 병력이 그대로 돌아서서 전남도당의 핵심 유격지구들을 공격해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리산에서 군토벌대의 작전이 진행 중인 동안 전남도당은 미리 입수한 정보에 따라 각 지구에 공격대비령을 내렸다. 염상진이 총사의 병력을 이끌고 도당사령부가 옮겨간 백운산으로 급히 이동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104)

     

    (……)우리는 지금 빨치산 본연의 임무에 그 어느때보다도 충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속적인 투쟁으로 적의 후방을 교란해 대고, 그 결과로 어마어마한 적의 정규군들을 주전선에서 끌어 내린 것이다. 적의 병력을 끌어내린 만큼 주전선의 싸움은 인민군들에게 유리하게 된다. 인민군들이 계속해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게 하려면국방군들을 더 오래 끌어잡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빨치산의 소멸인 것이다. 빨치산들 모두가 죽어야만 수행이 가능한 일이다. 빨치산……당과 함께 존재하고, 당을 위해서 소멸하는, 당의 정치군대. 마침내 모든 빨치산들은 바로 그 본연의 임무 앞에 선 것이 아니가. 그렇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만이 투쟁의 최선이다. 그것 외에는 올바른 길이 없다. 그것이 역사의 길이다…….

    손승호는 휘몰아쳐오는 북풍을 가슴 뻐근하도록 들이켜며 어금니를 맞물었다.(127)

     

    손승호는 한밤에 토벌대의 공격을 받고 정신없이 도망친다. 우연히 발견한 환자트에 몸을 숨겨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토벌 작전 15일이 끝난 후 손승호 부대는 1/3로 줄어들었다.

     

    빨치산들은 보투를 열심히 하는 한편으로 토벌대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확보하기에 시간을 보냈다. 능선과 능선을 잇느라고 온 산에 거미줄을 치듯 깔아놓은 야전용 전화선은 말할 것이 없었고, 더 중요한 것은 총알줍기였다. 능선을 따라 토벌대가 진을 쳤던 자리를 찾아다니면 총알이 여기저기에 수월찮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140)

     

    1월 하순, 토벌대의 지리산 2차 공세가 끝났다. 이해룡의 부대는 이번에도 대원의 절반을 잃었다. 김범우는 포로수용소에서 계속 정하섭과 접촉한다. 정하섭은 김범우에게 반공포로로 수용소를 빠져나가라고 전달한다. 선우진은 휴전이 되면 지금과 같은 일 보다는 기자가 되겠다며 기회를 달라고 송지운에게 부탁한다.

     

    2월이 되자 4차 군토벌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귀순한 빨치산들이 토벌대에 투입되면서 남은 빨치산에겐 치명적 피해를 입혔다. 동지의 배신에 기존의 방식을 바꾼 투쟁을 하느라 빨치산들의 고생은 배가 되었다. 하대치 부대에선 2대대장 천점바구와 김혜자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죽었다.

     

    100일에 걸친 군토벌대의 동계대공세 동안 전남북과 경남, 그리고 지라산에서는 1만8천여명의 빨치산들이 죽어갔다. (214)

     

    전남도당에서는 이태식과 하대치에게 전사의 최고 영예인 ‘영웅’ 칭호를 내렸다.

     

    투쟁영웅- 그것은 실로 대단한 영예이면서, 거기에 걸맞는 우대도 뒤따르고 있었다. 그 개인 앞으로 조직의 여러 가지 신문들이 다 배달되었고, 모든 공식문건들이 따로 전달되었다. 그건 영웅을 하나의 단위 부대와 똑같은 비중으로 대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민해방이 된 다음의 대우에 대해서도 미리 밝혀져 있었다. 당적 지위가 우선적으로 주어짐은 물론이고, 평생 동안 의 식 주를 당이 해결하고, 비행기를 제외한 모든 교통편도 일생에 걸쳐 무료였다.(216)

     

    조계산지구에서는 뜻하지 않은 경사가 벌어지게 되어 모든 대원들이 어리둥절해져 있었다. 지구정치위원 안창민과 여맹위원장 이지숙의 결혼이 그것이었다. 동지들 간의 이성관계는 철저하게 금지시켜 온 상태에서 그들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뜻밖의 사실이었고, 더구나 당에서 결혼식을 올려준다는 것에 대원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225)

     

    세무서장 최익도는 군토벌대장과 손을 잡고 제재소를 사들이려 한다. 하지만 염상구가 먼저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금융조합장인 유주상을 찾아간다. 이들은 염상구가 망하기를 바라고 있다. 구산댁은 친,외손주 네 명을 데리고 산다. 월사금을 못낸 아이들은 학교에도 가지 않고 있다. 이근술이 찾아와 아이들 모두 야학에 보내라고 하자 구산댁 얼굴이 밝아진다. 하대치의 장남 길남이의 얼굴에 상처가 있는 것을 본 이근술은 서민영이 자신에게 보여준 이 길이 고맙기만 하다.

     

    6월 8일 판문점에서 휴전회단이 가조인되었다. 그 소식이 산에 있는 빨치산 대원들한테까지 퍼지는 데는 열흘 가까이 걸렸다. 그것은 그들에게 ‘5.15 결정’에 이어 두 번째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산속의 열 명 당원보다는 인민 속의 한 명의 당원이 낫다‘. 그 결정을 알고 충격을 받지 않은 빨치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건 곧 빨치산투쟁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270)

     

    우리의 투쟁은 이제 현실투쟁이 아니라 역사투쟁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학습을 열심히 해왔으므로 현실투쟁이 무엇인지, 역사투쟁이 무엇인지 다 아실 것입니다. 현실투쟁은 인민해방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눈앞에서 성취시키는 것이며, 역사투쟁은 인민해방을 우리가 목숨을 바쳐 뒷날 역사 속에서 성취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투쟁은 바로 목숨을 바치는 죽음의 투쟁입니다.(273)

     

    염상진과 그 부대원들은 최후까지 싸우자는 결의를 한다.

     

    위장 귀순이 탄로 난 안창민과 이지숙이 체포되었다. 염상진은 이 소식을 신씨 부인에게 알리고 소식을 들은 옛 소작인들이 땅을 내놓는다. 안창민과 이지숙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조원제도 선요원과 함께 붙잡혔다. 아버지가 경찰서로 찾아와 지금부터 뒷바라지를 맡겠다고 한다. 이태식은 조원제의 소식을 몰라 애가 타지만 그가 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손승호는 만2년을 보낸 산을 내려온다. 박두병은 손승호를 보내며 그간의 투쟁경험을 세상에 널리 알리길 바란다고 한다. 손승호는 고향으로 돌아가 숨은 투쟁을 할 예정이다. 산아래 개울에서 목을 축이고 있던 손승호는 네댓명이 함께 손 총에 맞는다.

     

    2월이 끝나가면서 또 한 번의 겨울이 지나갔다. 동백꽃이 지고 진달래 꽃망울들이 부풀어오르는 가운데 이태식이 죽었다는 소문이 백아산지구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해 조계산지구와 백운산지구로 번져나갔다. 부하 세 명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했다고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쏘고 죽었다고도 했다. 죽은 것도 통명산 줄기라고도 했고, 무등산 기슭이라고도 했고, 백아산 매봉이라고도 했다. 어쨌거나 ‘백아산 호랑이’로 ‘강철부대’를 이끌며 도당의 영웅칭호까지 받았던 머슴 출신 이태식은 영웅다운 죽음의 전설을 남긴 채 겨울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나갔던 것이다.

    겨울은 또 많은 빨치산들을 데려갔다. 그래서 지구마다 부대개편을 하게 되었다. 지구 기동연대장 하대치는 지구 부사령관이 되었다. (319)

     

    2월에 정부의 긴급통화조치령이 발표됐다. 원 단위를 환으로 바꾸면서 통화를 100대 1로 인하한 것이다. 3월엔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했다. 6월18일 김범우는 마산에서 반공포로로 석방되었다. 집안 식구들은 불구의 몸이 된 그를 보자 충격을 받는다. 정부는 휴전협정을 앞두고 산에 있는 잔비를 소통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휴전 후 북쪽에서 모든 책임을 남로당 계열에게 덮어씌우고 숙청하자 남은 빨치산들은 충격을 받는다. 이해룡이 당의 버림을 받은 빨치산들이 어떻게 살겠냐고 하자 김범준은 당은 선택적 결정을 했던 것이며 박헌영이 스스로 역사선택을 했다는 말로 이해룡을 설득시킨다. 9월 20일쯤 이현상의 죽음을 알리는 삐라가 지리산에 뿌려졌다. 며칠 뒤, 이해룡 부대도 기관총의 난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염상진은 총알이 떨어지자 네 명의 대원과 함께 자폭했다. 염상진은 율어로 가는 길목 산자락에 묻혔다. 장례가 끝난 며칠 뒤 깊은 밤, 여섯 그림자가 그 무덤을 에워쌌다. 하대치와 대원들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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