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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백산맥(조정래) 줄거리: 8권
    내가 읽은 책/태백산맥(조정래) 줄거리 2021. 1. 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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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4부 전쟁과 분단

     

    195010, 북상후퇴가 완전 차단되면서 전남도당의 조직 정비가 마무리 되었다. 동부에 백운산지구, 서부에 불갑지구, 남부에 유치지구, 북부에 노령지구, 중부에 조계산지구, 북동부에 백아산지구가 구축되고 이들을 총괄하는 총사령부가 무장부대로 독립되었고, 그 위에 도당이 보위대로 무장했다. 전남, 전북, 경남도당의 입산자 수만 해도 6만이었다. 만약의 경우 지리산을 생각하고 있는 염상진은 입산자들의 비무장 상태를 고민하고 있다. 1110<해방일보> 일행은 만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이학송은 <인민군신문>의 취재출장을 간 부대에서 정하섭을 만나 반갑게 인사한다.

     

    심재모는 그의 성실함 하나로 훈련소에서 소령으로 진급했다. 하지만 훈련소에는 안전하다는 이유로 많은 뇌물이 오갔고 군수품을 빼돌리는 일도 많았다. 이런저런 꼴을 보지 않으려면 자신이 퇴직을 하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부대원들만은 구타없이 군 생활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계급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혜택을 받는 군인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어쨌든 진급은 괜찮은 일이라 생각한다. 김범우는 영국 군인이 자신에게 비밀스럽게 한말을 되씹는다. 미군은 참전 전에 아시아인을 미국인 이하로 생각하라는 정신교육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포로로 잡은 중공군 장교에게 잔인한 고문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뒤틀린다.

     

    김범우는 후퇴하는 미군부대를 빠져나온 뒤 인민군에 투항한다. 124일 국군은 평양에서도 철수했다. 권 서장은 읍내서 뻥튀기 장사를 하고 있는 이근술을 찾아가 복직을 권하지만 이근술은 자신 같은 사람에겐 맞지 않는 직업이라며 거절한다. 그런 이근술 앞에서 권 서장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난 예비검속 때의 학살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당 정치위원인 안창민은 입산자들을 대상으로 사상교육을 하고 있다. 교사였던 경험으로 성인에게도 쉬운 말로 꼭 필요한 교육을 시키며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패배감이나 열등감을 해소해주려고 애쓴다. 하대치 역시 자신의 대원들에게 군사기본학습을 시키려고 열을 올리고 있다. 구빨치들의 활약은 새로 입산한 이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국민방위군이 설치되면서 염상구는 벌교국민방위군 대장이 되어 다시 인원을 징집할 일을 맡게 되었다. 이 법이 시행되자마자 징집을 피해 서울로 와 있던 최인석은 하숙집 근처에서 군인들에게 잡혀 트럭에 올라타야 했다.

     

    이학송은 이원조와 함께 다시 서울로 떠나고 혼자 남겨진 김미선은 울적하기만 하다. 민기홍은 신문사의 지시대로 서울을 빠져나가기 위해 서울역으로 가고 그곳에서 국민방위군으로 뽑으려는 군인들과 뽑히지 않으려는 피난민들 사이의 혼잡을 스쳐 지나며 본다. 방위군으로 징집돼 걸어서 경상도를 향해가던 최인석은 결국 비참한 상태로 거리에서 숨을 거둔다. 최인석보다 사흘 뒤 역시 서울에서 방위군으로 징집된 송성일은 옥천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국민들은 거지보다 못한 국민방위군들의 행렬을 죽음의 대열이나 해골의 대열이라 부르며 정부의 무모함을 비난했다. 195113일 대한민국 정부는 두 번째로 부산으로 옮겨갔다. 이학송은 인민군을 따라 6일 서울에 들어왔다. 급한 일을 마치고 자신의 집에 들어 선 이학송에게 이웃집 할머니는 아내가 잡혀갔고, 남은 삼남매가 엄마를 찾아 나선 뒤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려준다. 인민군 군복을 입은 김범우가 신문사로 이학송을 찾아온다. 이들은 그간의 소식을 나누며 식사를 한다. 김범우는 투항 뒤 미군을 심문하는 통역관이 되었다. 전남도당에서도 하산할 준비로 들떠있다.

     

    국방군 제 11사단 3대대 2중대장을 맡은 양효석은 남보다 빠른 진급과 직책에 군대 생활에 더 열성을 바치고 있다. 253대대는 거창군 신원면 수복을 위해 중무장을 갖추고 출발했다. 그러나 이미 신원면은 텅 비었고, 대대는 손쉽게 그곳을 장악한 뒤 산청으로 향했다. 남은 경찰과 청년방위대원들이 신원면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횡포를 저지르고 있던 새벽, 공비들이 나타나 면사무소를 불태우고 달아난 사건이 일어났다. 연대장의 서슬에 기겁을 한 대대장은 즉시 부대를 산청에서 신원면으로 돌렸다. 군인들은 군경가족을 제외한 500명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학살에 희생된 사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서울과 인천이 미군 폭격기에 의해 다시 불바다가 되었다.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을 이어가는 초토화 작전이 계속 되자 이학송과 <해방일보>는 다시 후회를 서두르고 있었다. 27일이었다. 심재모는 정규훈련소에서 방위군 교육대로 좌천되어있었다. 그가 교육대로 왔을 때 그가 본 것은 난민수용소와 같은 교육대의 실상이었고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대원들의 데모가 일어났다. 손승호는 짧지만 진정한 빨치산을 경험하게 한 산 생활을 접고 박두병과 함께 총사에서 활동하게 된다.

     

    정하섭의 아이를 임신 한 소화는 이지숙의 배려로 들몰댁과 함께 후방부대로 나와 빨치산을 돕고 있었다. 같이 있던 외서댁은 자진해서 산으로 들어간지 넉달이 지난 때였다. 장보러 간 들몰댁이 들어서자마자 경찰과 청년단원이 들이닥쳐 이들을 붙잡아갔다. 거창양민학살사건이 대외로 알려지기 전, 국방방위군 사건으로 이미 이승만 정권은 난파위기에 빠졌다. 양효석은 보성지역 토벌군사령관으로 벌교에 나타나 그의 어머니를 벅차게 했고 기관장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 기세에 염상구는 두말없이 양효석의 부하로 자신을 낮췄다.

     

    천점바구는 존경하는 강동식 동지의 아내인 외서댁을 보호하고 싶지만 외서댁은 어떤 경우에도 뒤로 빠지는 법없이 가장 치열한 빨치산으로 살고 싶어한다. 천점바구는 누구보다 밝은 밤눈과 구빨치를 통해 몸으로 체득한 전술, 젊음 등으로 지구내의 최강 소대를 이끌고 있었고, 그 중심 소대원이 외서댁이다. 전선이 멀어지면서 도망가는 대원들이 늘고 있는 것은 산으로 들어 간 빨치산의 중대한 문젯거리였다.

     

    전선이 소강상태로 빠지면서 사병들의 사상자가 늘어갔다. 심재모는 참호파기를 생명 지키는 필수 조건이라 교육하며 대대원을 독려한다.

     

    남인태는 잡혀온 하대치의 아내 들목대과 소화를 고문했다. 염상구는 기지를 발휘해 두 여자를 벌교로 데려온 후 남들의 짐작과는 다르게 총살대신 순천재판소로 넘긴다. 사령관 양효석은 자신의 너그러움이 읍내에 퍼지자 흡족해하며 염상구에게 술을 사겠다고 한다.

     

    피난국회 제54차 본회의를 통해 거창양민학살사건이 공식화되었다. 염상구는 부하를 시켜 윤옥자의 가방에 쪽지를 넣게 한 뒤 그것을 빌미로 옥자에게 혼인을 약속 받는다. 양효석은 벌교를 떠나면서 송성일을 꼭 군대로 보내라고 권 서장에게 당부한다. 김사용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염상진은 두 아들을 보지 못한 채 임종한 김사용을 생각하며 마음이 먹먹하다. 염상진은 김범준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함께 김사용의 장지를 찾는다. 멀리서 부친의 장례행렬을 본 김범준은 지난 세월 부친이 자신에게 보여준 믿음을 생각하며 두 번 절을 올린다.

     

     

    하대치는 어느새 빨치산과 군경들 사이에서 염상진처럼 또 한 명의 전설이 되어있었다. 아내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나, 총살 대신 순천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나 그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그는 이제 대장의 위치에서 수백명의 사람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전남도당에는 재귀열이 발생해 전체 병력의 3~4할이 쓰러졌다. 춘궁기의 빨치산들이 발병한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환자들은 병으로 쓰러졌지만 회복을 도울 음식이 없어 죽어갔다. 지리산 골짜기마다 까마귀 떼가 그 위를 덮쳤다.

     

    염상구의 배려로 소화와 들목댁은 징역 5년이란 가벼운 형을 받은 뒤 포승줄에 묶여 감옥으로 들어갔다. 두 달 후면 자식을 낳을 소화는 살고자하는 욕망이 생겼다. 심재모는 파편상을 입은 팔 때문에 야전병원으로 수송되어 수술을 받은 뒤 회복 중이다. 야전 병원마다 빽을 써서 제대하려는 나이롱 환자들이 있는데 유 중위가 그랬다. 빨치산의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다른 아이들의 놀림과 폭행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하대치의 아들 길남이, 염상진의 딸 덕순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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