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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농촌에 살고 있지만 아직 도시인 2020. 10. 5. 10:36
오전의 마당은 고요하다. 자갈을 뚫고 풀이 돋았으면 좋겠다. 돋아나는 풀을 감당하지 못해 자갈을 덮었으면서 다시 풀을 기다리는 것은 두더지 게임을 시작하려고 손목에 힘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마당에 쌓인 저 낮은 자갈더미는 소박한 허세다. 지금이라도 마당에 흩어놓으면 평평하게 될 텐데 여유를 보여주고 싶어서 저렇게 쌓아놓은 것이다. 자갈더미를 볼 때마다 허세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럽다. 자갈을 깔면서 집에 있던 적벽돌로 길을 만들었다. 저곳에 이름을 붙인다면 배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저 길을 오가는 것은 우리 집 마당개 두 마리다. 개 발바닥에는 검은 패드가 붙어있어 사람의 신발 구실을 한다고 하지만, 맨발로 자갈 위를 다닐 것이 안쓰러워 만들었다. 개들은 자갈 위를 마구 뛰어다녀도 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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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 무침오늘 한 끼 2020. 10. 4. 09:58
남편이 손질한 더덕을 식탁에 올려놓고 나갔습니다. 저는 도라지인줄만 알았습니다. 텃밭에는 더덕도 있고 도라지도 있지만 더덕이 워낙 구석진 곳에 있어 생각이 나지 않았거든요. 도라지는 여름에 두 번이나 풀을 뽑아준 적이 있어 아주 잘 기억이 납니다. 깨끗하게 정리 된 도라지 밭이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잡초밭이 되어 동네 분들에게 게으르다는 흉을 건너서 들었거든요^^;;;; 도라지인줄 알고 무얼할까 하다가 초고추장 무침을 하기로 합니다. 일단 가늘게 썰어줍니다. 원래 도라지는 찢어야 제맛이지만 보기에 잘 찢겨지지 않을 듯해서 최대한 찢은 도라지처럼 길쭉하게 썹니다. 나머지는 지퍼백에 넣어 냉동, 아니고 냉장 보관합니다. 며칠내로 다 먹을 수 있을 거 같으니까요. 요리랄 것도 없는 무침 요리. 만들어 두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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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주둥이검색을 리뷰하기 2020. 10. 3. 19:24
오늘 검색어 중에 눈에 띄는 것은 '개 주둥이'다. 개는 동물이니 주둥이라고 하는 표현이 맞지만 반려견과 함께 살다 보니 그러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말도 가만히 생각하게 된다. 평소에 내가 반려견에게 주둥이라는 말을 사용했던가? 산책 갔다 오면 요즘 도깨비바늘 풀의 가시가 털에 묻어있다. 그럴 때 '개야, 네 주둥이 근처에 가시가 묻었어." 이렇게 말하진 않았다. 혹은 '주둥이 좀 씻자'라고 하지도 않았다. 하기야 개의 앞발을 발이라고 하지 않고 "손!"이라고 하지 않는가. '입마개'라고 하지 '주둥이 마개'라고도 하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교감이 생기고 정이 쌓이면 종 (種)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듯 하다. 사람이 개처럼 되기 어려우니 개를 사람처럼 대하게 된다. 그래서 나 역시 반려견이 마당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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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적성검사하기 (매우 주관적)농촌에 살고 있지만 아직 도시인 2020. 10. 3. 09:49
아래에 산밤(산에서 나무 혼자 알아서 열매 맺은 자연산 밤)이 있습니다. 누가 무상으로 이만큼 갖다주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반응을 할지 체크해보세요. 1. 우와, 산밤이다! 내가 심지도 가꾸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생기다니 정말 감사하다. 잘 챙겨먹고 이웃과도 나눠먹어야지. 2. 작지만 정말 맛있어 보이는 밤이네.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할까? 검색해보자! 3. 아쿠! 밤이네......너무 작아서 까기 힘들겠는 걸. 하지만 공짜로 생겼으니 한 번쯤 챙겨먹는 것도 나쁘지 않아. 4. 가만있자. 이걸 까고 있으면 손도 아프고 시간도 너무 많이 뺏기겠는 걸.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데 내 시간과 내 손은 소중하지. 큰 것만 골라 몇 개 먹어보고 나머진 내버려두자. 지금부터의 내용은 귀촌 8년차 농촌의 노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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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청 만들기농촌에 살고 있지만 아직 도시인 2020. 10. 2. 14:39
수돗가에 한 그루 있는 석류나무. 얼른 입을 확 벌려 보석 같은 알맹이가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뒤쪽으로 슬며시 썩어가는 것이 보이자 더 기다리지 않고 수확해버렸다. 오리주둥이처럼 입을 삐죽 내민 석류들. 여태 본 것 중에서 가장 많이 달린 석류들. 작년엔 여름에 다 떨어져 붉은 열매는 보지도 못했다. 올해는 어쩐일인지 잦은 태풍에도 견뎌서 마당에 나갈 때마다 활짝 핀 꽃을 본 것처럼 마음을 환하게 해주었다. 한 번 씻어서 물기를 닦아낸 뒤 알갱이를 따로 모으려고 잘랐다. 맨 손으로 했더니 식초를 만진 것처럼 손이 쓰렸다. 새콤달콤한 알갱이들. 숟가락으로 파서 한곳에 모아주었다. 석류를 손질하다보니 겉이 썩은 것은 속까지 다 썩었고, 겉이 멀쩡해도 속이 썩었거나, 완벽해보이던 알갱이가 숟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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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풋고추텃밭 이야기 2020. 9. 29. 13:10
화단 한 켠에 심은 꽃무릇이 한창이다. 화려하기가 청나라 황궁의 후궁들 옷차림 같다. 추석을 앞두고 한가해보이지만 제각각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 마음도 조금은 닮지 않았을까? 꽃구경을 했으니 제할일을 다 끝낸 고추 비닐하우스로 가본다. 스무 근 정도 수확한 고추밭은 이제 마무리 할 일만 남았다. 풋고추가 제법 많이 달렸으니 다음 해 풋고추를 딸 때까지 먹을 수 있는 양을 간수해보기로 한다. 하루에 다 딸 수 없으니 조금씩 일을 나눠서 한다. 왼쪽에 있는 고추는 조림을 해서 밑반찬으로 먹고 오른쪽 고추는 반 갈라 씨를 밴 후 부침을 해 먹을 작정이다. 식구가 둘 뿐이다 보니 반찬 양도 적어서 먹을 수 있을 만큼 조금만 해놓는다. 집에 있는 재료를 있는대로 사용해 조림을 만들었다. 양념은 진간장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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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수제 간식 만들기 -고구마 닭가슴살말이반려견 이야기 2020. 9. 28. 20:28
텃밭에서 고구마를 조금 캤다. 큼직한 것이 몇 개 나와서 우리 집 반려견들의 간식을 만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보통은 마트나 인터넷에서 개껌을 사 거기에 닭가슴살을 감아주는데 미루다 보니 개껌을 사지 못했다. 고구마을 말리면 개껌 역할을 할 듯해서 우선 몇 개를 썰어 삶는다. 세 개를 골라 삶았다. 사람이 먹기엔 좀 부담스러운 크기다. 30분 정도 삶았더니 젓가락이 푹푹 들어간다. 뜨거울 때 썰면 모양이 망가지니까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적당한 크기로 썰어주었다. 자른 고구마는 가정용 건조기에 세 칸 정도 말렸다. 어차피 닭가슴살을 말아서 한 번 더 말려야 하니까 55도로 8시간 말려주었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냉동 닭가슴살 2kg짜리 두 개를 사서 자연 해동시킨 후 깨끗이 씻어, 말린 고구마스틱에 감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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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날들 & 톨스토이검색을 리뷰하기 2020. 9. 26. 20:09
요즘 작은 노동이 계속되어 피곤하다. 아파트에서 살 때를 생각해본다. 작은 공간이어서 내 시간이 많았다. 늘 밖에서 일을 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식사는 절반 이상을 배달음식. 외식. 인스턴트로 해결한 듯싶다. 자주 바깥으로 외출을 했다. 친구를 만나고 등산을 하고 요가를 다니고 스포츠댄스를 배우고. 남은 시간은 책을 읽고 휴식을 취했다. 생각해보니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오래 목욕을 하기도 했다. 시골생활은 정말 피곤하다. 요즘 특히 그렇다. 텃밭에서 나오는 고구마, 땅콩, 고추, 참깨 등을 갈무리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아직 멀었다. 양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오전에 바깥 일을 좀 하고 집에 와보니 어제 하던 일이 여기저기서..